나의 고등학교 시절 외할머니는 꾸중을 하실 때면 으레 “사내는 16세가 되면 호패를 찼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호패를 무슨 굉장한 물건으로 여겼는데 나중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인 것을 알고 실소하였던 일이 있다.
당시는 물론 얼마 전까지도 외할머니의 말씀을 입에 붙은 질책 정도로 여겨 왔으나 근래에 와서 부쩍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이 마음 깊이 와 닿고 있다.
외할머니께서 호패를 운위하신 것은 그것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그 나이의 사람이라면 제 스스로 이름에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이 되라는 충고였을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겨우 내 이름표, 즉 호패를 죽는 날까지 더럽히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이 나이와 남녀 구별 없이 서로 자연스레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친근감을 느낀 한편 예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름은 부르라고 지어준 것인데 한국사람들은 무슨 연유인지 친구 사이를 빼 놓고는 잘 사용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전 반가에서는 본명을 놔두고 아명, 호 또는 자를 썼으며 지금도 우리는 상대방을 호칭할 때 이름보다는 그 사람이 갖고있는 직위나 직명등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다. 언젠가 식모를 가정부, 운전수를 기사, 간호부를 간호원 등으로 명칭을 격상시킨 일도 있었다.
체면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명칭변경으로 돈 들이지 않고 신분을 평가절상시키는 효과를 보았지만 그러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모두 선생님과 사장님이 되었고 누구에게나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칭이 그럴 듯하다고 관계가 향상되거나 그 사람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름 자체도 그 사람의 실체가 아닌 그림자에 불과한데 하물며 직책과 직명은 그 사람의 됨됨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조직상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좋은 칭호로 자신을 포장하여 그 명칭이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향유하려 들거나 또는 이해당사자에게 아부하는데 사용하여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예컨대 최고의 호칭인 목사를 놔두고 박사라고 더 붙여준다든가 박사는 어느 특정 분야를 연구한 공적에 대한 학위일뿐인데 마치 세상의 모든 것에 통달한 인생박사 처럼 행세하려는 것등이다.
최근에는 그런 호칭마저 제 크레딧을 못 받고 있다. 이제는 명칭이 갖는 프리미엄까지 상실돼 가는 험난한 세상이 되었다. 선생님도 예전의 스승이 아니고 목사님도 예전의 목자가 아니며 선배도 예전의 형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존경을 받아야 할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거짓 말쟁이와 죄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근로자는 무법자와 싸움꾼의 별칭이 되어 버렸다. 명칭은 격상되었는데 하는 짓거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제 이름 아닌 다른 명칭으로 불릴수록 그 사회는 진실보다는 허위가, 실제 보다는 가식이 더 판을 친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럴 듯한 명칭 뒤에 숨어있는 그 인간의 본연의 실체, 그 추한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는 놀랍고 실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름 보다 그 사람을 사실 그대로 더 대변해 주는 거울은 없을 것이다. 나는 회계사, 장로 등의 일반명칭 보다도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고유명사인 내 이름 ‘조만연’으로 불리고 싶다.
조만연/수필가·회계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