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세상사는 이야기!’ 오늘은 새삼 칼럼의 타이틀을 읽어본다. 길든 짧든 우리의 선택과 관계없이, 우리는 주어진 만큼 이리저리 부대끼며 세상을 살다 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만남’을 말할 것이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사람과 만남을 갖느냐?’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이 만남의 줄거리들로 대부분이 결정되어지지 않나 싶다. 특히, ‘결혼’을 어떤 사람과 하느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보다도 많이 남은 시간들을 결정하기에 일륜지 대사라고 일컫는 것이 아닐까?
반면에 인생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만큼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헤어짐’이다. 어떻게 헤어지느냐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헤어짐이 곧 다음 만남의 ‘행복’의 여부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몇 해전 ‘이혼 극복 프로그램 웍샵’에 참석했을 때 상담가로부터 들은 간증이 기억난다.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혼자 건너와 처음 몇 달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방안에서 혼자 울기만 했단다. 두고 온 아이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져서, 살기 위해 라면 부스러기를 입안에 부스러뜨려 넣었던 그녀는, 많은 해가 지나가도 ‘TOY R US’에 T자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다. 눈물이 복 바쳐서.
그녀는 명문대 출신이었고 전 남편 또한 최고 학벌의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계속되는 구타를 감당 못하고 이혼을 요구한 그녀는 아이들을 다 뺏기고 혼자 내쳐졌단다. 아이들을 볼 수도 없이.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졌지만, 그녀의 연세로는 한국 문화가 그랬다. 지금은 임상 심리학자가 되어 많은 아픔이 있는 이들을 돕고 있지만, 아이들을 향한 그녀의 그리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렇게 이유도 없이 엄마를 잃어야 했고 자신의 친모를 나쁜 엄마로 세뇌 받으며 커갔을 그 아이들의 상처는 또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얼마전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녀가 임신 3개월이 되던 때 전 남편이 옛 여자친구를 찾아냈고 돌아가기로 했다고 선언을 했단다. 그래서 보내주었고, 이제 한살이 되어 가는 아이를 항상 격주마다 만나서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함께 보낸단다. 그녀는, 자기를 그렇게 떠난 전 남편을 아주 좋은 아버지라고 소개했고 나 때문에 ‘아버지’라는 형상을 아이의 세상에서 빼앗아가고 싶지는 않아라고 했다. 사랑하는 자기의 아이가 ‘아버지’상을 바로 보고 자라길 바란다고.
미국에선 이혼을 해도 법정에서 각기 부모의 방문을 위한 오더가 내려지기에,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한쪽 부모를 영원히 잃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무튼 자신의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만남’을 배려한 그녀의 성숙한 헤어짐에 박수를 보냈다.
12월이 되면 아동복지국 소셜워커들은 모두 ‘산타’가 된다. 여기저기에서 기부한 선물들을 한 꾸러미씩 가져다주며 기다리던 아이들의 밝은 웃음에 함께 젖어든다. 그리고 아픈 헤어짐을 경험한 그들에게 바른 만남의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과 또 깊은 이야기 속으로 접어든다.
학교, 친구, 상담, 또한 부모님과의 방문은 어떠했는지. 특히,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될 그들이기에,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관계의 마무리가 같은 것 같다. 모든 만남이 행복한 만남이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아름다운 헤어짐으로 마무리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우연이 다시 만나는 기쁨 속에 행복한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쉽다.
이제, 2003년 한해를 마무리하는데 불과 며칠이 남았다. 혹시나 바르지 못한 헤어짐을 통해 상대방에게 분노와 상처를 남겨주지는 않을지 한번 돌아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아름답게 마무리하자.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과, 관계들과 성숙한 헤어짐으로 다음의 ‘행복한 만남’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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