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박 안젤라
어느 주말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의 골프 토너먼트를 겸한 친교행사가 팜스프링스에서 있었다. 전날부터 여행 가방을 챙기며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일상을 벗어나는 변화는 미지에 대한 가슴 설레는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회색빛 매연으로 뒤덮인 다운타운으로 출근하던 발길을 돌려 시원하게 펼쳐진 사막을 달려가면서 부푼 마음이 가슴 가득 일렁였다. 어느 임원이 단체 로고가 새겨진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티셔츠를 제공하여 회원들은 일색으로 갈아입고 모두 각자의 특기를 과시했다.
보람되고 뜻 깊었던 행사를 추억으로 접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무리 시간이 다가왔을 때였다. 아침부터 뿌리던 비가 오후가 되면서 물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
빗길에 먼길을 가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차가 중심을 잃었다. 자동차는 마치 배가 풍랑을 만나 기우뚱거리듯 좌우로 흔들리며 일차 선에서 사차선까지 미끄러져 가더니 쾅하고 중앙 분리대를 받는 순간 높이 떴다 떨어지면서 돌았다.
우리는 이렇게 죽는가 보다하는 생각과 함께 순간 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는 더 이상 치고 받고 올라갔다 떨어질 힘마저 잃었는지 중앙 분리대에 기댄 채 뒤쪽을 향해 반대 방향을 보고 서 있었다
남편은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토록 급박한 상황에서 프리웨이 어느 곳에도 그 순간 차가 없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길가로 차를 빼 놓고 보니 뒷부분은 휴지가 구겨진 듯 파손되었고 타이어는 터지고 은색 반짝이던 예쁜 모습이 폐차의 흉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나는 내 손등과 남편의 팔을 번갈아 꼬집어보며 우리 살아있는 것 맞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절대자가 행하시는 기적의 힘을 깨달으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감사를 드렸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야는 흐려지고 황량한 사막 벌판에서 무엇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도움의 손길이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는 그 곳에서 그때 누군가가 우산도 없이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20세 가량의 젊은이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당신들을 도와주러 왔다며 자기 전화로 앰뷸런스와 AAA를 불러 주는가 하면 우리 아들딸에게도 알려 주고 경찰이 왔을 때 모든 수습 절차를 도와준 그 청년은 필립이라 하였다.
필립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저녁 약속이 있어서 가는 길에 사고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중요한 약속을 뒤로 한 채 우리를 도와준 사랑의 실천자였다. 가치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조건 없는 희생으로 고귀한 정신의 귀감이 되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로 온 세상이 회색 빛인 사막 벌판에서 우리의 사고 소식을 듣고 되돌아오는 동료들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프리웨이를 운전할 때 가끔 고장난 차 옆에서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며 지나쳐 버리던 일이며 굶주린 거지의 구걸하는 손을 보면서 돈을 줘봐야 마약이나 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지나쳐 버리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필립과 우리는 가끔 만나 정담을 나누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오늘도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린다. 그 날 사고에서 우리 부부가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던 것은 정녕 기적이었으며 우리 앞에 나타난 필립이란 청년은 바로 그 분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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