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2003
올해 추수감사절도 우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포식했다.
해마다 터키를 굽는 언니 집에 아침부터 들이닥친 우리 가족과 동생네 가족은 터키를 굽는 동안 국수 삶아먹고, 새우 튀겨먹고, 밤 까먹고, 고구마 벗겨 먹고, 떡 먹고, 빵 먹고, 감·귤·배 종류대로 과일도 깎아먹으면서 배를 두드렸다. 오징어가 있고 비프저키가 있었으며 모찌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라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터키 디너를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저녁만찬 식탁에는 터키와 햄, 매쉬드 포테이토, 그레이비, 찰밥 스터핑, 샐러드 플레이트, 옥수수, 빵 접시가 푸짐하게 올랐다.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면서도, 우리는 와인도 마시고 커피도 마셨으며 주어진 모든 상황에 순응했다. 올해 터키는 유난히 맛있게 구워져 몸무게에 더욱 보탬이 됐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나는 먹는 일의 사치에 관하여, 또 감사의 조건에 관하여 반성 좀 하였다. 그렇게 실컷 먹고나서는 너무 먹었다는 사실에 괜히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론 더 먹을 배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이중 상태에서 갈등하던 중 기특하게도 지난 주 교회에서 들은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상기한 것이다.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남아있고 입을 여분의 옷가지가 있으며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잘 수 있다면 당신은 전세계 25%의 부자 안에 속합니다.
만일 당신의 은행에 잔고가 있고 지갑에 현금이 남아있다면 전세계 부자의 8%에 들어 있습니다. 만일 오늘 아침 당신이 건강하게 일어났다면 이번 주간 세상을 떠날 100만명 정도의 사람들보다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전투의 위험과 감옥의 외로움, 고문과 굶주림의 아픔을 겪지 않고 있다면 전세계 5억명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체포, 고문, 죽음의 위험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전세계 3억명보다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부모가 아직 살아있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미국에서도 특별한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나는 매우 특별히 축복 받은 존재. 감사할 조건이 하나 가득 쌓여있는 사람이다. 전세계 수억명보다 낫고 전세계 8% 안에 드는 부자라는거 아닌가.
멀리 전세계로 갈 것도 없다. 언젠가 유엔 탈북난민 1호인 이민복 선교사의 간증 테입을 들었는데 북한에서는 달걀이 일년에 생일날 딱 한번 먹는 귀한 음식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이 자기 생일은 잊어버려도 너 계란 언제 먹었나?라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댄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는 라면을 ‘꼬부랑 국수’라고 하는데 최고급 음식으로 치기 때문에 주민들은 구경도 못해보고 아주 높은 관리들이나 평양에 가야 한번 먹어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라면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국수는 20~30분 끓여야하고 수프는 들어있지도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팝(쌀밥)은 구경할 수도 없고 고기와 콩을 전혀 먹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백질 부족으로 손톱발톱이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며 자랐다는 그는 ‘음식 맛의 차이라는 것은 굶주림 정도의 차이’라고 정의했다. 음식을 앞에 놓고 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굶겨보라는 것이다.
나도 몇해전 북한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외부에 개방했다는 나진 시내에서도 남루함을 지나 홈리스 피플처럼 보이던 주민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 추위와 굶주림으로 얼마나 배고파하며 떨고 있을까.
있는 것 중심으로 살지 않고, 없는 것 중심으로 살아가면 감사가 없다고 하신 목사님 말씀. 건강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일할 직업이 있고, 좋은 이웃과 친구들이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감사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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