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너무 싸울 일이 없어서 자극이 필요하다면 한가지 시도해볼 일이 있다. 샤핑을 같이 가는 것이다. 평소 사이 좋은 부부가 기분 좋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가 몇 시간 후 잔뜩 화가 나서 돌아왔다면 십중팔구는 부부동반 샤핑을 갔을 때이다.
얼마 전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는 데 한 부부의 분위기가 영 석연치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부가 샤핑 몰에서 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컴퓨터 부품 몇 가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같이 나갔다가 기다리기 지루해진 아내가 잠깐 다른 가게들을 둘러본 것이 문제였다.
“마침 좋아하는 브랜드 옷가게가 세일을 하더군요. 이것저것 고르고 입어보고 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어요”
아내는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해 블라우스 한 장만 ‘건지고’ 서둘러 갔는데도 남편은 창피할 정도로 마구 화를 내더라고 했다. 그 남편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금방 오겠다던 아내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고, 어디를 갔는지 모르니 찾아 갈 수도 없고, 셀폰은 터지지를 않고 …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자니 화가 안 날수가 없었을 것이다.
샤핑 몰에만 들어서면 기운이 펄펄 넘치는 아내, 그 뒤를 마지못해, 혹은 분을 삭이며 따라다니는 남편 사이의 해묵은, 그러나 절대로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갈등을 해소할 방안은 없을까. 최근 독일의 한 식당이 묘안을 짜냈다. 아내가 샤핑하는 동안 남편을 맡아주는 ‘탁남소’ 프로그램이다.
함부르크 중심가에 있는 이 식당은 여성들이 샤핑을 많이 하는 매주 토요일 남성용 휴게소를 운영한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식당은 맥주와 식사는 물론 컴퓨터 게임, 운동경기 녹화 테이프, 특별 강좌 등 남성들이 즐길 만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남편들은 몇 시간씩 아내를 따라 다녀야 하는 고역을 면할 수 있고, 아내들은 남편 눈치 보느라 시간에 쫓기며 샤핑하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어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샤핑을 둘러싼 남녀간 갈등은 왜 생기는 것일까. 가끔 이메일로 재미있는 조크를 보내주는 분이 있는데 얼마 전 메일에 남녀 샤핑 패턴을 잘 비교한 조크가 포함돼 있었다 - “남성은 필요한 물건 1달러 짜리를 2달러 주고 사고, 여성은 필요도 없는 2달러 짜리 물건을 1달러라고 산다”
남성의 샤핑 동기는 단순하다. ‘필요’이다. 우유나 빵이 떨어지면 수퍼마켓에 가듯이 옷이나 구두가 필요하면 그 물건을 사러 가는 행위가 샤핑이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눈에 띄면 숙제하듯 사버리기 때문에 종종 바가지를 쓴다.
반면 여성에게 샤핑은 단순히 물건구입 행위가 아니다. 여가 활동이며 스트레스 해소법이고 일종의 취미생활도 된다. “오후에 할 일 없는데 샤핑이나 가자”“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윈도우 샤핑이라도 하면서 머리를 식혀야겠어”라는 말들이 여성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몇 년전 여성들의 샤핑 심리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여성들은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보면 뇌속 혈맥에 짜릿한 자극이 온다. 그런데 그 물건이 30%나 50% 쯤 세일을 한다고 하면 여성들은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여성들이 종종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단지 세일이라는 이유로 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값이 너무 싸서 안 사면 손해보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
필요에 따라 단숨에 사고 마는 남성의 샤핑 패턴, 물건 하나 고르느라 기꺼이 하루종일 발품을 파는 여성의 샤핑 패턴은 수렵 채집시대 때부터 형성된 유전인자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사냥하는 남성’은 목표물에 집중해 순간적으로 쟁취하는 것이 몸에 배었고, ‘채집하는 여성’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살피고 고르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샤핑 몰마다 벌써 크리스마스 상품들이 등장했다. 샤핑 좋아하는 여성들도 이 계절에는 샤핑이 스트레스가 된다. 샤핑으로라도 싸움을 해야 할만큼 싸움이 아쉬운 부부는 별로 없을 것이다. 샤핑은 부부가 따로 하는 것이 지혜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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