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라디오 방송 토크쇼에서 사회자와 초대손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MTA 정비사 노조의 파업이었다. 사회자는 파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초대손님은 버스와 지하철 승객을 대신해 나왔으니 그 노선은 말할 것도 없다.
초대손님은 나는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는 노동자인데 연간 5만달러 이상 버는 사람들이 더 달라고 파업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거품을 물었다. 그는 파업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해 일터로 나갈 수 없어 염치 불구하고 직장 근처에 있는 친척집에 임시로 얹혀 살고 있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사회자와 초대손님이 서로 맞장구를 치고 있을 때 한 주민이 전화를 걸었다. 이 주민은 자신을 버스운전사라고 소개하고는 파업의 정당성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태세였다. MTA 경영진의 부당함과 노조원들의 어려운 현실을 들이대며 초대손님의 논리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몇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바퀴벌레’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바퀴벌레들이 빨리 올라타지도 않고 신속하게 내리지 않아 운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운전사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람에게 빗댈 수 없는 단어가 공중파를 탄 것이다. 파업 논쟁에 느닷없이 돌출한 단어에 사회자나 초대손님 또는 청취자 모두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지나고 버스운전사의 발언에 대해 애청자들이 불화살을 퍼부었다.
파업 명분이 있나 없나 하는 논쟁은 일단 옆으로 제쳐졌다. 버스 승객을 바퀴벌레로 취급했으니 당연했다.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운전사는 운전사들간에는 경영진을 당나귀로 부르는 등 몇 가지 표현이 있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문제는 한 운전사의 실언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차별적 태도가 두루 퍼져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명도 안 되는 정비사들이 50만명이 되는 버스, 지하철 승객을 ‘볼모’로 이권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 ‘볼모’ 가운데 버스 승객의 평균 수입은 연간 1만2,000달러이니 정비사의 수입에는 ‘새 발의 피’다. 오늘이 파업 한 달째 되는 날이다. 파업이 장기화되는 데는 노조가 경영진과 타협점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불편을 겪고 있는 승객이 아무리 많아도 바퀴벌레쯤으로 여기는 의식구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참다 못한 승객들이 버스에서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를 모아 파업타결과 상관없이 MTA 노조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약자’에게 장기간 피해를 주는 집단이기주의에 따끔한 ‘한방’을 먹일 지 주목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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