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은 아름답다. 하늘을 찌르는 백설 덮인 봉우리, 저녁 노을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호수, 흰 거품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성난 파도에는 인간의 손으로 지어낼 수 없는 장엄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런 자연의 웅장함에 경탄하고 이를 즐기게 된 것은 근세 이후다. 중세 이전 대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넓은 평지에는 왕과 귀족이 집을 짓고 산 속이나 바닷가에는 가난한 나무꾼이나 어부가 사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언덕 위 ‘달동네’가 빈민촌의 상징으로 돼 있다.
이런 자연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은 산업혁명과 이와 함께 등장한 낭만주의다. 시인과 묵객이 산과 들과 물가를 돌아다니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대도시의 복잡함과 공장의 매연에 지친 시민들이 막연한 옛날 목가적 생활에 대한 향수에 젖으면서 자연 숭배는 현대인의 의식 한 구석에 깊숙이 자리잡게 됐다.
그 결과 서양에서는 똑같은 집이라도 평지보다는 언덕 위, 같은 아파트라도 낮은 층보다는 높은 층이 더 비싸다. 또 비슷한 위치에 있더라도 집에서 보이는 주변 경치가 어떠냐에 따라 값이 큰 차이가 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말리부와 팔로스버디스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집들이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샌디에고에서 샌타클라리타에 이르기까지 남가주 전역을 휩쓸고 있는 산불이 난지 1주일이 돼 가지만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10여명이 숨지고 2,000채 이상이 불탔으며 40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이번 불은 가주 사상 최대의 자연 재해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은 1년 중 가장 건조한 시기에 몰아닥친 강풍을 타고 불길이 사납게 번진 데다 일부 정신병자들이 방화까지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그러나 피해가 커진 원인의 하나로 무분별하게 계속되고 있는 주택 개발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높고 경치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주민들의 심리를 이용, 새로 개발되는 주택 단지의 상당수가 산림과 인접한 언덕 지역에 들어서 있다. 이번에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위험에 처한 주택 중 많은 숫자가 그런 신흥 단지에 속한 것이다.
미국 같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어디 살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10월의 남가주는 언제나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설상가상으로 알 카에다가 다음 번 테러로 산불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도 당국에 접수됐다. 오사마 빈 라덴이 어렵게 비행기를 납치하느니 손쉽게 놓을 수 있는 산불작전으로 미국인을 골탕 먹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전망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좋지만 이에 따르는 위험도 염두에 두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 본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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