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서부의 공업 도시 빌바오는 불과 수년 전까지 아무도 그 존재 여부조차 모르던 도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임스 본드마저 이 도시에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빌바오가 이처럼 뜬 이유는 단 하나,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1997년 10월 문을 연 이래 1년 사이 130만 명의 관광객이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이 미술관을 보러 몰려들었다. 그 덕분으로 수천 개의 일자리와 수 억 달러의 관광 수입이 들어오면서 죽어가던 도시는 생기를 되찾고 있다. 문화가 도시를 살리고 죽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이 현상을 일컫는 말까지 생겨났다. ‘빌바오 효과’가 그것이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LA 시민들은 멀리 스페인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번 주 다운타운에서 문을 연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을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프랭크 게리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설계한 탓이겠지만 두 건물은 형제처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준다.
16년 전 월트 디즈니의 미망인 릴리안이 5,000만 달러의 시드 머니를 내놔 시작된 디즈니 콘서트 홀은 총 경비 2억7,400만 달러를 투입해 지어진 최고 음향시설을 갖춘 음악회관이다. 연주석이 베를린 필 공연장처럼 홀 한 가운데 있어 2,200개에 달하는 객석 어디 앉아도 1등석과 같은 음질의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홀의 완성으로 새 성당과 도로시 챈들러 퍼빌리언, 콜번 음악 학교, 현대 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는 그랜드 가 일대는 LA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빌바오와는 달리 수많은 관광 자원을 갖고 있는 LA에 이런 명소가 생겼다고 관광객 수가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내년 주요 공연까지 대부분 매진 될 정도로 인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디즈니 홀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6년 전 10억 달러를 들여 지은 게티 센터도 처음에는 몇 달 전 예약을 해야 겨우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예약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 홀의 개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1세기가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경우 태평양의 중심 도시는 막강한 경제력, 극도로 다양한 인종구성, 무한한 발전 가능성 등을 갖춘 LA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LA의 약점은 문화적 후진성이었다.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예를 보더라도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뛰어나지 않고서는 정상의 도시로 인정받지 못한다. 게티에 이은 디즈니 홀의 탄생은 LA가 ‘서부의 깡촌’에서 ‘고급 문화의 도시’로 자라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점에서 한인을 비롯한 LA 시민 모두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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