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 중부 지역에 1,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 있다. 이 절이 회교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은 비결은 화산 폭발 후 화산재에 파묻혀 장구한 세월을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절에는 크고 작은 종들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종 안에 부처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손을 집어넣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부처의 왼손 검지손가락에 대고 무언가를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한번씩 시도해 본다고 한다. 손가락을 잠깐 움직여 잘하면 큰복이 굴러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소원 성취를 못해도 손가락 운동했다고 간주하면 되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베테런 어부 베드로는 예수의 말에 따라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설령 끌어올린 그물이 텅 비었더라도 그물을 내동댕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종일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 애를 썼건만 번번이 허탕친 베드로로서는 예수의 지시대로 한번 시도해 본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었다. 예수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세속적인 프리즘으로 보더라도 베드로가 ‘본전’ 생각에 속을 끓일 일은 아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태도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엄청난 손해도 본전으로 계산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앞에 재신임 받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물러나도 아쉬울 게 없다는 인상이 짙다. 측근 비리의혹 등 잇달아 터지는 악재와 추락한 지지도, 정치와 경제난국을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결단인지 ‘한 길 사람 속’을 속속들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측근들도 어리둥절해 하는 충격 요법임엔 틀림없다.
가족을 이끌고 산행에 오른 가장이 길을 가로막은 철조망을 보고는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투척했다간 옆에 있던 가족들이 파편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철조망은 제거되겠지만 부상 입은 가족을 이끌고 더 이상 신바람 나는 산행을 할 수 없다.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엉뚱한 행동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은 북한의 애용품이다. 스캇 스나이더의 저서 ‘벼랑 끝 협상’이 지적하듯 이 전술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위기타개 전술이며 그런 대로 논리가 있고 일정한 패턴도 형성한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 전·후 재신임 카드를 꺼내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위기 돌파용으로 사용했다면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대선 후보는 사퇴하면 그만이지만 만일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재신임에 의해 ‘소환’되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 핵, 이라크 파병, 늪에 빠진 경제, 신당 마찰, 송두율 파문 등 국론분열 요인이 쌓여 있는 지금, 대통령이 드러낸 가벼움이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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