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영화는 대체로 재미있다. 그가 ‘악한 로봇’과 ‘착한 로봇’으로 번갈아 나오는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를 비롯, 화성을 무대로 한 공상 과학물 ‘토털 리콜’(Total Recall) 등은 액션물의 대명사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들 영화 제목은 지금 와서 보면 주지사 소환 선거에 딱 들어맞는다. 슈워제네거가 데이비스를 ‘끝장내고’(terminate) ‘완전히 소환’(total recall)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주연작 중 이번 선거와 관련해 생각나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진짜 거짓말’(True Lies)이 그것이다. 이번 주지사 소환 투표에서 한인들이 압도적으로 소환을 반대하고 부스타만테를 찍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인의 70%가 소환에 반대표를 던졌으며 차기 주지사로는 58%가 부스타만테를, 34%가 슈워제네거를 지지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조사가 사실이라면 한인들은 가주민 전체는 물론이고 아시안 중에서도 특이한 집단임에 틀림없다. 가주 유권자의 55%가 소환에 찬성하고 49%가 슈워제네거, 32%가 부스타만테를 지지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LA 타임스가 발표한 출구 조사에 따르면 라틴계 중에서도 부스타만테에 표를 던진 사람은 전체의 55%에 불과했다. 한인들은 같은 라틴계보다도 열렬히 부스타만테를 지지한 셈이다.
아시안 유권자를 상대로 한 조사 결과도 전체 투표자의 53%가 소환에 반대하고 34%가 부스타만테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돼 있다. 아시안 유권자 중에는 절대 다수가 시민권을 갖고 있고 민주당 성향이 강한 일본계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거기다 이번 선거는 미 민권 연맹(ACLU)을 위해 일하고 있는 골수 한인 민주당원까지 데이비스 소환에 찬성하고 슈워제네거를 찍었을 정도로 민주당 이탈이 심했었다.
그런데도 한인의 투표 성향이 가주 전체는 물론 아시안 전체 평균보다 민주당에 가깝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문 조사는 조사 방식과 표본 추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좌우된다. 우선 이 조사는 가주 전체의 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LA 한인타운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주로 실시된 것이다. 조사를 한 기관도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한인들이 어떤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느냐를 조사하는 것은 필요하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거 결과가 마치 한인 전체를 대표하는 양 발표하는 것은 잘못이다.
앞으로도 한인들이 미국에 사는 한 수많은 선거를 치를 것이다. 이제는 한인 주요 단체들이 힘을 모아 제대로 된 출구 조사를 해 볼 때가 되고 남아 지났다. 여론 조사를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에는 보통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는 경구를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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