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첫날(First Day of Autumn).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3일. 책상 앞에 놓인 9월 달력의 그 날짜 아래에는 가을의 첫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소리 없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여름도 이제 그 긴 꼬리를 내렸다. 햇살도 여름날에 비해 훨씬 맑고 투명하고 따스해 보인다. 도심의 가로수 이파리들도 이제 조금씩 누렇게 색을 떨구고 있다.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어느새 시작된 가을은 파란하늘에서 가슴을 파고들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낙엽들이 말해주는 듯 하다.
어느 시인이 ‘가을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계절’이라고 말했다. 무수한 나뭇잎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허전해져서 마음속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그러나 그 시인은 ‘가을에 잃어버리는 것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나뭇잎을 잃는 것은 새잎을 얻기 위해, 마음의 허전함도 더 알찬 마음으로 채우기 위해 잠시 비워 두는 것일 뿐이라며….
그래서인지 가을이 되면 모두가 마음이 풍요한 가운데 허전하고 허전한 가운데 풍요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우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또한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고, 과일도 익어가며 그리고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물론 책을 읽으며 고요함과 정갈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때문에 가을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계절이지만 건강 측면에서 이런저런 복병이 숨어 있어 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방에서는 가을을 여름에 번성했던 자연이 갈무리되는 시기라고 말한다. 한 여름 무성했던 식물들은 열매를 맺고, 동물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이 먹어 살을 찌우며 동면을 준비하는 기간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 역시 가을이 되면 본능적으로 겨울대비를 한다고 한다. 가을은 식욕이 왕성해지고, 섭취된 음식은 체내의 뼈로 모든 영양을 공급하여 저장시키며 봄, 여름 동안 저하된 면역기능이 강화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체력 기능이 좋아지는 가을에는 기와 영양을 더 많이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한방에서 가을철은 폐왕간쇠(肺旺肝衰)한 계절이라고 한다. 폐는 왕성하고 간이 쇠약해지는 시기라는 말이다. 또한 가을은 아침과 저녁의 일교차가 크고 여름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운 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세차지니 폐 기능이 왕성해야 병도 들지 않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때문에 가을에 폐 기능이 왕성하려면 여름과 달리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영양을 잘 섭취, 뼈에 진액을 보충하고 기를 충실히 모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음식 욕심은 금물이다. 가을은 먹거리가 풍성하고 식욕이 왕성해지는 시기라 음식을 자제하지 못하고 많이 먹게되면 비만이 되기 쉽고 위장에 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동의보감」에 ‘가을 세 달은 용평’이라는 말이 있다. 용평이란 ‘만물을 거두어들이고 다시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연의 갈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때문에 봄과 여름에 안에서 밖으로 발산한 기운을 가을에는 ‘마음을 가다듬고 신기를 안으로 모아야 된다’고 한다.
즉, 가을에는 기를 보충해야 한다는 것. 「동의보감」은 기를 보충하려면 가을의 천기와 지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가을은 천기가 쌀쌀해지고 지기가 깨끗해지는 시기라고. 그러므로 아침에 닭 울음과 함께 일찍 일어나 마음을 안정시키면 가을의 쌀쌀한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몸에 신기를 거두어들일 수 있고, 마음속에 잡생각을 없애고 일찍 잠이 들면 폐기를 맑게 해주어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이 바로 「동의보감」이 전하는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이다.
건강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는 바람일 것이다.
만약 오래 살고자 한다면 모든 지나친 것을 삼가야 한다. 과식, 과음, 과로, 과민, 과욕 등은 뼈를 상하게 하고, 피를 흐리게 하며 체내의 정기를 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건강하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뒤따라야 한다.사람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가을이 왔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에 적합한 계절이라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어느 새 성큼 다가온 가을,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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