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ACE=5](/photos/NewYork/20030919/1에드리언)
매년 한인학생이 다수 재학 중인 학교의 교사 1명씩을 선발, 한국방문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뉴욕한인학부모협의회 후원으로 올 여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퀸즈 베이사이드 소재 MS 67 중학교 애드리언 레슬리(사진) 교사가 본보에 한국방문기를 기고, 원문을 한글로 번역, 소개한다.
한국 방문 회상기
이번 여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한국에서 만났던 사람들,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에 대한 나의 기억을 되살리며 날로 새로운 교훈을 얻고 있다.
나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 초청으로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 방문한 21명의 교육자들과 함께 2주간 한국을 여행했다. 이는 해외이주 한인들의 교육을 담당한 교육자들에게 한국인들이 보낸 사랑의 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에 걸린 배너를 본 순간, 나는 미국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미국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나의 조상들은 영국과 독일에서 이민 왔지만 내가 지닌 유럽의 뿌리가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지닌 그들의 뿌리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했었다.
서울 도착 직후 첫 식사를 하면서 그때서야 난 내가 지구의 또 다른 한쪽 끝에 와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난 성장하면서 식탁에 앉으면 무릎에 냅킨을 펼쳐놓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날 난 마루바닥에 앉아 식사를 했고 냅킨도 보지 못했다. 잠시 후 화장실을 가면서도 젖은 수건이 그
릇에 담겨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고 1주일이나 지난 뒤에서야 그 용도를 알게됐다.
호스트 가족의 아파트에 묵던 기간 중 난 또 부끄러운 일을 경험했다. 거실에 커다랗고 하얀, 마치 미국에서 보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 눈에 띄었다. 호스트 집 아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에어컨디셔너라며 크게 웃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쯤 미국에는 에어컨디셔너도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한인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슷한 경험들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교실에서 다른 인종의 학생들이 크게 떠들고 마구 행동하는 것을 보고 분명 한인학생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처음 미국식당을 이용할 때에도 손 닦는 젖은 수건이 어디 있는지, 왜 숟가락은 주지 않는지 두리번거릴 것이라 생각된다.
작은 사건들이었지만 한 사람의 주변환경이 불안전한 변화를 맞았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교사로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교사로 재직 중인 나는 사실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잘못된 단어사용과 이상한 발음을 하더라도 난 곧바로 교정을 받으며 공부하는 자세로 배워나갔다.
하지만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난 나의 서툰 한국어가 무척 부끄러웠고 그래서 영어만 사용하고 다녔다. 나는 지금 나의 한인학생 제자들을 생각해본다. 수업시간에 아마도 그들은 교사의 질문에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어문법이나 어색한 발음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일정 중 광주방문은 나의 눈에 즐거움을 줬고 경복궁 방문은 역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채워줬으며 불교사원 방문은 내 영혼을 살찌웠다. 가장 감명 깊은 방문지는 바로 판문점의 DMZ, 비무장지대였다.
내 인생 56년의 세월동안 길거리에서 군인을 본 적도 없고 군인들에게 검문을 당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은 적도, 심지어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본 적도 없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우리가 DMZ를 방문하기로 했던 그날 아침 비가 내렸다. 바로 전날에는 20년만에 처음으로 DMZ에서 총성이 오고갔던 날. 어둑어둑한 하늘과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왠지 DMZ 방문이 망설여졌고 날씨와 여러 상황 때문에 방문이 취소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일정은 그대로 진행됐다.
우리를 태운 차가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었고 하늘을 향해 높이 둘러쳐진 철조망 저 너머로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검문소에서 한국군인들이 버스에 올라타 방문자의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지시사항을 여러 번 반복해 주입시켰다. 정해진 장소 이외에서의 사진촬영 금지, 진(Jeans)바지 착용 금지, 지갑 소지 금지, 샌들 금지, 반바지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착용 금지 등의 조항이었다.
첫 번째 검문소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교사 한 명은 비디오 카메라를 압수 당했고 검은 진바지 차림의 펜실베니아 출신 교장선생은 자신보다 몸무게가 70파운드나 덜 나가는 날씬한 버스 운전사와 어쩔 수 없이 바지를 바꿔 입어야만 했다.
버스를 2번 갈아탄 뒤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 많은 지시사항이 전달됐다. 2명씩 짝지어 다니기, 걸으면서 말하지 말기, 갑작스런 행동 금지, 손 흔들지 말기, 빨리 걷고 뛰지 말기 등등. 함께 간 21명의 서양인들은 빗속을 뚫고 뒤뚱뒤뚱 걸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제발 총에 맞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현장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더라도 정부를 상대로 아무런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뒤 우리는 남북평화협상이 열렸던 장소로 갈 수 있었다. 협상 테이블을 둘러섰을 때 남과 북을 향해 서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봤다. 그들은 모두 내 아들 또래였다.
방문지 중 가장 슬펐던 곳은 바로 `애통의 다리’를 찾았을 때였다. 대한민국이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한국인들은 어디를 선택하든 다시는 반대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조건하에 다리 북쪽 또는 남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고 한다. 궂은 날씨로 낮게 깔린 구름과 안개 사이로 당시 애통의 다리를 건너던 한국인들의 슬픔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드디어 학교가 개학했다. 바라건대 앞으로 내 제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단 한국의 땅을 기억하면서, 또 나의 심금을 울린 현지에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을 기억하며 나도 한국일보 독자들과 함께 노란 손수건을 바라보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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