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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1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짙게 감도는 1914년초,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권력을 쥐고 있던 청년 투르크당 간부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논의했다.
1909년 술탄(황제)의 전제군주제도를 무너뜨리고 입헌 정치를 부활한 젊은 개혁세력들은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국에 설 것인지,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국의 편에서 싸울 것인지를 고민할 때 선택 기준은 어느쪽이 승전 가능성이 높은지 하는 것이었다.
힘센쪽에 서야 방대한 터키 영토와 독립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독일이 전쟁에 이길 것으로 판단했다. 1차 대전 직전에 독일의 군사력, 경제력은 영국을 추월했고, 견원지간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할 정도로 당시 독일의 위세는 대단했다. 터키의 청년 지도자들은 강한 나라에 붙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중에 미국이 연합군에 가세할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청년 투르크당의 지도자 엔베르 파샤는 1차 대전 발발 직전에 독일과 비밀 조약을 체결해 동맹국에 가담했고, 독일은 터키 영토의 보전을 약속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은 파죽지세로 프랑스와 러시아를 공격했고, 터키는 개전 초기에 러시아 내륙 깊숙이 진격하고, 바그다드를 공격한 영국군을 전멸시키는 등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이 무너졌고, 투르크 제국도 동시에 패전국으로서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1453년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발칸 반도에서 흑해 연안, 북아프리카, 중동에 이르기까지 과거 로마제국 영토의 절반을 차지했던 거대한 이슬람 제국은 패전후 연합
국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소아시아에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술탄은 나중에 ‘터키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은 청년 장교 케말 파샤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다. 나라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려던 젊은 진보적 혁신파들의 판단 착오는 자신의 운명은 물론 700년 제국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 지도자들은 선택을 강요당할 때가 많다. 그때 지도자가 어떤 판단을 하는지에 따라 나라, 기업, 조직의 운명이 달라진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볼 때 중국대륙에 명-청의 세력 균형이 깨질 때 조선왕조는 명을 고집하다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고, 구한말 격변하는 세계 조류를 읽지 못하다가 식민지가 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전투병력의 이라크 파병을 놓고 국론이 분열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선택할 기로에 서 있다.
노 대통령은 국민적 인식이 판단 기준이라며, 여론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가 관찰할 대목은 이라크 전쟁 이후에 미국을 지지했던 나라들은 경기 회복 속
도가 빠르고, 반대편에 섰던 나라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이다.
자위대 파견을 약속한 일본은 15년 가까운 슬럼프에서 헤어나 2?분기에 4% 높은 성장을 달성했지만, 전쟁을 반대한 독일과 프랑스는 같은 시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국제 경제 시스템에 힘의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올들어 미국은 달러 약세 정책을 취했고, 유로는 달러에 대해 20% 절상됐다. 국제시장에서 물건 값이 20% 오르고는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보유외환을 쏟아부으며 엔화 절상을 저지하는 바람에 유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됐다. 미국이 일본의 환율 방어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전쟁후 유럽에 경제 보복을 할 것을 명백히 한바 있다. 이에 비해 최근 아시아를 방문한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도쿄에서 일본 엔화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중국에 위안화 절상만 집중 거론했다.
전투병 파견에 일부 세력의 저항과 얼마간의 비용이 들 것이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외교적,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것이 역사를 진보시킨다는 사실을 청년 투르크당의 실패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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