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은 저 세상이 깊고 깊은 땅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발 딛고 집 짓고 농사지으며 사는 지표가 있고 나면 그 밑은 무한대의 허방으로 고대인들은 상상했다.
저승을 관장하는 신은 하데스라는 신인데 그의 세계에 이르는 길은 한없이 멀다. 무거운 쇠 덩어리를 떨어트리면 9일 밤 9일 낮 동안 떨어져야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 상상을 불허하는 거리이다. 삶에서 갈라져 죽음에 이르는 길이 그토록 멀고 먼 길인데 거기까지 내려간다고 저승에 다 다다른 것도 아니다. 여러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첫 번째는 아케론 강, 즉 ‘비통의 강’이다. 이 강을 건너고 나면 ‘시름의 강’이 나오고, 이어 분노가 들끓는‘불의 강’이 나오고, 그리고 나면 멀리 떨어져 조용히 흐르는 레테 강이 나온다. ‘망각의 강’이다. 이 레테 강을 건너고 나면 비로소 혼령은 이승에 대한 비통함과 회한, 분노를 다 잊어버리고 편안하게 저승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번 가면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저승길을 스스로 서둘러 가는 사람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자고 나면 자살 소식이 보도되곤 하던 차에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주 한인들까지도 충격에 멍한 상태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들어 자살이 무슨 유행병 같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남편의 주식투자 실패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두 자녀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성적부진을 비관해 아들이 자살하자 아들의 죽음을 비관한 아버지가 연이어 자살을 하며, 카드 빚, 사업실패 등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정회장의 자살은 고향 방문 희망이 영영 사라졌다고 낙담한 어느 실향 노인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최근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 시간당 1.5명이 어디에선가 목숨을 끊고 있다는 계산이다.
남가주에서도 올해는 유난히 자살이 많았다. 1월초 실연에 따른 동반자살을 시작으로 에이즈·암 환자의 자살, 고독한 노인의 투신 자살등 자살 사건이 자주 보도되었다.
이유가 어떠하든 자살은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어 오는 문제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심리로 이해된다. 이승의 온갖 비통하고, 회한에 찬 일들을 ‘망각의 강’에 흘려버리고 싶은 심리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요즘처럼 많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니다.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이다.
자살이나 자살 기도한 사람의 대부분이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업실패, 실연, 배신등 외부상황은 자살의 필요조건은 되겠지만 그것만으로 천길 낭떠러지 저승길로 내닫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신건강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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