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으로서의 업적과 대통령을 그만 둔 후의 처신은 별개 문제인 모양이다. 레이건은 20세기 후반 미 대통령 중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꼽힌다.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리고 장기 호황을 이뤄 미국의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임 후 그의 처신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대통령을 그만두자마자 일본으로 달려가 강연료라는 이름으로 수백만 달러를 챙겼을 뿐 아니라 남은 시간은 골프로 소일했다.
반면 카터는 현직에 있을 때 가장 죽을 쑨 인물의 하나다. 경제는 두 자리 수 인플레와 고실업에 시달렸고 외교적으로도 이란 인질극에 휘말려 고생했다. 업적이나 인기도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에 속한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나온 뒤에는 노숙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인류의 안식처’(Habitat for Humanity) 운동에 뛰어들어 손에 망치를 잡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 작년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그의 정책이나 생각에 비판적인 사람들까지도 “응당 받을 것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전직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가 속해 있는 칼라일 그룹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칼라일 그룹은 전 세계 내로라 하는 정·재계 인사들로 구성된 투자 그룹이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칼루치 전 국방장관, 박태준 전 포철회장, 메이저 전 영국 총리 등이 모두 구성 멤버다. 현 부시 대통령도 이 그룹이 한 때 투자했던 케이터 항공의 이사였다.
이들은 막강한 인맥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최신 정보는 물론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그룹이 오사마 빈 라덴 일가의 자금을 관리해 왔으며 2001년 9·11 사태가 났을 때 다른 아랍계는 철저히 조사를 받던 상황에서 미국에 있던 빈 라덴 친척들을 소리 없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이 그룹이 투자해 놓은 국방 산업체들이 떼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칼라일은 공기업이 아니라 그 활동과 투자 내역이 비밀에 싸여 있다. 음모론자의 표적이 되기 딱 좋다. 댄 브라이오디는 최근 ‘철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책에서 칼라일 그룹의 실체를 고발하고 군부와 산업, 정부의 닫힌 트라이앵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퇴임 후 무슨 일을 하건 그건 자유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는 전임 대통령의 자격으로 지금도 미국 정부 방침에 관한 브리핑을 받는다. 대통령 때 맺어 놓은 인맥과 정보를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일에 개입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부시 가문은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편안히 살 수 있을 만큼 연금이 나온다. 꼭 아들에게 정치적 부담을 줘 가며 까지 비밀 투자 그룹에 가입해 활동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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