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밥 호프에 대해 미국인들이 보이는 애정이 각별하다.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각 매스컴의 보도들을 보면 단순한 인기 연예인이라기보다 몇 10년 같이 삶을 나눈 사람을 떠나 보내는 듯한 개인적 친밀감들이 서려있다.
“코미디언이 갖춰야할 온갖 재능을 타고났다”는 제이 레노의 격찬대로 그는 천부적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기, 그에 대한 미국민들의 애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3세대, 4개 전쟁을 거치며 이어진 그의 군 위문공연이다. 공포와 고독이 있는 암울한 곳, 웃음을 잃은 곳이야말로 그의 조크와 유머가 가장 힘을 발휘하는 무대였다. 밥 호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웃음바다를 이룬 장병들 앞, 가설무대에 선 그의 모습이다.
2차대전부터 시작해 한국전, 베트남전을 거쳐 걸프전으로 막을 내린 그의 위문 공연은 1941년 5월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에서 시작되었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라디오 쇼를 군기지에서 진행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처음 별로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2,000명의 장병이 모인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2,000명의 청중을 모아놓고 아무도 못 나가도록 헌병이 문을 지킨다는 말이지요?”
그날 이후 그의 위문공연은 북아프리카, 남태평양, 유럽, 호주, 그린랜드등 세계 각지를 돌며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던 장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린랜드에서는 어찌나 추운지 “한 병사가 침대에서 떨어져 파자마를 부러트렸다”는 즉흥 조크로 꽁꽁 얼어붙은 병사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기도 했다.
전장에서 그의 방문은 병사들에게 특별한 위로였다. 작가 존 스타인벡이 1943년 2차대전 당시 호프 일행의 군병원 방문 광경을 취재해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보낸 기사 내용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장 가슴이 메이는 일은 아마도 병원에서 사람을 웃기는 일일 것이다. … 통증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일렬로 누운 곳에, 고요하고 고독한 그곳에 밥 호프 일행은 들어와 속으로 움츠려 들었던 상이용사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열게 하고, 관심을 끌더니 마침내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호프가 평생 전쟁터와 해외 군기지들을 방문하느라 다닌 거리를 모두 합하면 900만마일이 넘다고 한다. “마일리지를 다 합하면 달나라 왕복 항공권을 따낼수 있을 것이다”고 그는 생전에 농담을 했었다.
그는 청중을 사랑했고, 청중의 환호하는 모습을 사랑했다. 언젠가 그가 요트를 전세내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모처럼의 공식적 휴가였다. 그런데 그가 며칠만에 서둘러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고기들은 박수를 안치지 뭔가” 그는 이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을까.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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