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죄인’이란 주장을 실감나게 하는 게 하나 있다. 교통 법규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 치고 주행 속도를 빠짐 없이 지킨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미 전국의 모든 도로가 시속 55마일 속도 제한에 묶여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1974년 석유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개솔린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최고속도를 이렇게 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만들어진 이 법은 그 후 80년대 들어 석유 값이 폭락한 뒤에는 “교통 사고를 줄여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유지됐다.
이 법이 철폐된 것은 1994년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다음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야가 펼쳐진 서부 주에서까지 이런 법을 시행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란 주장이 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주에서는 아예 법 집행을 포기한 적도 있다. 이 법 폐기 움직임이 일자 랠프 네이더를 비롯한 소비자 보호 운동가들은 결사 저지를 외쳤다. 이 법이 폐기되면 교통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매년 6,400명 이상 늘어날 것이란 게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 의회는 고속도로 속도 제한을 각 주에 일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주 연방 교통부는 미국 내 고속도로 사상자 비율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미국 도로 교통 안전도는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게 교통부 측 설명이다. 고속도로에서의 속도는 여러 사고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속도만 낮춘다고 장땡은 아니다. 이와 함께 속도 제한 철폐가 시간과 운송비 절감을 가져와 연 20~50억 달러의 실질 소득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근 운전 중 셀폰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뉴욕 주는 이미 금지시켰고 가주는 주 하원에서 통과된 상태다. 과연 이를 금지할 경우 얼마나 사고가 줄어들 것인가. 법 시행 18개월이 지난 뉴욕 주의 예를 보면 전혀 줄어든 바가 없다. 속도 제한과 마찬가지로 셀 폰 또한 교통 사고의 소소한 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1년 AAA 조사에 따르면 운전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 중 셀 폰이 원인이었던 경우는 1.5%에 불과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02년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조사에 따르면 운전 부주의 사고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길거리 구경(16%), 피로(12%), 한눈 팔기(10%), 승객과 아동의 난동(9%), CD나 테입 갈기(7%), 셀 폰(5%) 순으로 돼 있다. 또 손을 쓰지 않는 소위 ‘핸즈 프리’는 사고를 줄이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정신을 집중해 운전하는 것이 셀 폰으로 전화를 하며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다른 위험 요소는 방치해 둔 채 셀 폰만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형평의 원칙에 맞는 지는 의문이다. 입법가들은 “법이 많으면 법을 어기는 사람도 많다”는 노자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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