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은 서포 김만중의 대표작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진이라는 불제자가 다리 위에서 8선녀와 노닐다가 육관 대사의 노염을 사 지옥에 떨어진다. 그 후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상에 환생, 대원수와 위국공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두 부인과 여섯 첩을 얻어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나 말년에 황폐해진 영웅들의 무덤을 보고 인생 무상을 느끼게 된다. 찾아온 스님과 문답을 하는 가운데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은 성진으로 돌아와 있고 모두가 일장춘몽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성진이 이전의 죄를 뉘우치고 열심히 불도를 닦아 8선녀와 함께 극락에 간다는 것이 줄거리다.
편모 슬하 빈한한 가정에서 자라나 대사헌과 대제학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가 이 글을 쓴 것은 권좌에서 밀려나 남해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권력의 무상함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후대에 경계를 삼기 위한 생각이 없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으리라.
김대중 대통령 집권 5년 간 ‘대통령’(代統領)으로 무소 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뇌물 수수와 권력 남용 혐의로 긴급 구속됐다. 지난 수개월간 DJ 주변 인물이 숱하게 잡혀갔지만 박 전실장의 구속이 특히 한인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뉴욕 한인회장을 지내는 등 오랜 세월 교포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박씨를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미국에 올 때부터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정계에 투신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도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늘 말했다는 것이다. 그 후 DJ가 미국에 망명오자 박씨는 “친아들 이상으로” 그를 극진히 섬겼고 그 결과 사실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데도 성공했다.
미주 한인으로 한국 정치판에서 잘 나가다 감옥 생활을 한 사람은 박씨가 처음은 아니다. 한 때 월 스트릿 저널이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했던 유종근 전 전북지사도 뇌물수수죄로 유죄 판결을 박고 복역하다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박씨나 유씨 모두 미국에 있었더라면 성공한 사업가로, 명문대 교수로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미주 한인 가운데 한국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하나 둘이 아니다. 한인 회장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연방 하원 의원을 3번 지낸 사람부터 내리 떨어진 인물, 연방 상무부 국장을 지내던 인물 등등. 각자가 어디서 살건 자유지만 “미국에 왔으면 미국에 뿌리박고 살 생각을 하라”던 사람,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는 모습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겠느냐”는 시적 여운을 남긴 채 철창 행을 한 박 전 실장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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