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방미 후 변신이 화제다. 지지세력들은 그의 저자세 행보에 실망을 넘어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비판세력들은 이제서야 대통령이 현실을 깨닫는 것 같다는 호의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는 두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나는 노 대통령이 원래 반미가 아니었는데 반미로 오해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듣던 정보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접하는 정보가 달라진데 따른 긍정적 변화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크게 보면 우리가 자주외교와 동맹외교의 두 노선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하겠다. 자주외교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국가이익을 우리 스스로 정의하고 이를 위한 방법 또한 스스로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주외교의 대표적인 예로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서방진영 국가들이 미국이라는 맹주의 눈치를 살피며 미국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던 냉전시대에 이미 프랑스는 소련이나 동유럽국가들에 대해 이념을 초월한 자주외교를 전개했다. 1960년대 말까지 소련에 기대어 온 중국도 70년에 들어서면서 자주외교를 표방했다. 냉전의 양 축인 미국과 소련에 대해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이익을 스스로 설정하고 추구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었다.
이런 자주외교가 뜻과 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한국이 자주노선을 걸으려면 이를 싫어하는 국가들과 견줄만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로부터 올 수 있는 간섭, 방해, 불이익에 대응할 카드 혹은 외교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한국외교의 자주화를 주장하는 진보세력은 방법론으로서 중국과의 관계 강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미 중 사이의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세력이긴 하지만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정도가 이 두 국가가 한국을 필요로 하는 정도보다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확실한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이제이를 하려다 오히려 미·중의 협공에 국익에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동맹외교의 대표적인 예로서 영국과 일본을 들 수 있다. 과거 미국 못지 않은 영화를 누린 영국이지만 자신의 쇠락과 미국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곁을 지키면서 이익을 분배받는 정책을 취해오고 있다.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실한 선수의 ‘베팅’으로 소액이지만 돈을 대면서 이익을 분배받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맡기는 안보 ‘무임승차’를 택하면서 국가적 여력을 경제 재건과 성장에 쏟았었다. 지금은 심각한 불경기 지속으로 일본경제가 도마 위에 올라있지만 미국과의 동맹이 부강한 일본을 가능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의 어떤 대사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좀 못 미치는 지금의 수준에서 2만 달러 시대로 달려가려면 영국이나 일본식으로 실리적인 동맹외교의 틀을 더 강하게 붙들어야 한다고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분출하는 새로운 국민 정서와 요구를 미루어볼 때 지금의 모양과 내용 그대로의 유지는 집권세력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임에 틀림이 없고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지금부터 조금씩 자주외교의 틀을 모색하지 않으면 구한말처럼 강대국의 놀음에 나라운명이 결정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주외교와 동맹외교 가운데 우리가 어느 노선을 추구할 것인가는 전문가 진영의 치밀한 계산과 토론, 그리고 이를 지켜본 국민의 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정부와 집권세력은 문제를 혼자 붙들고 고민하지 말고 국민들 앞에 대안을 내놓고 우리 장래를 스스로 생각하고 평가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조경근/스탠포드대 교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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