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이 대통령이던 시절, 그의 외삼촌 일가가 새크라멘트에 살고 있었다. 선거 때는 그곳을 방문한 닉슨이 그들을 단상에 세워 소개도 했다. 그가 당선 된 뒤에도 삼촌 집안은 변화가 없었다. 모터 수리공이던 삼촌은 심장 발작으로 캘리포니아 정부로부터 극빈자 보조금으로 살아갔다. 신경장애자인 아내의 휠체어를 밀면서 집 주위를 산책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불경기로 아들은 직업도 잃었다. 대통령이 문안 편지를 보내고 백악관으로 초대해도 여비가 없어서 번번이 거절했다는 것이다.
연일 신문 상단에서 대통령 친인척 문제를 대하던 사람으로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친인척에게 뇌물은 고사하고 여비를 보태주는 이도 없다. 안다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왜 돈을 준단 말인가. 인정(?) 없는 나라의 당연한 이야기다.
유신시대에 김대중씨의 처조카 이형은 바로 내 옆자리에서 근무했었다. 김대중씨가 외삼촌이라는 이유로 3개월 짜리 외국 연수도 신원조회가 떨어지지 않았다. 울화를 핑계삼아 우리는 엄청 술을 마셔 댔었다. 그의 고모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5년 동안은 이형과 연락을 끊을 것이니 지금부터 찾아오는 이들을 조심 하시요." 라고 성탄카드에 적어 한국으로 보냈다. 나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유혹에 시달리고 견디어 냈다는 이야기, 하다 못해 셋이서 항상 어울리던 박형이 직장에서 감원되었을 때도 나서서 청탁 한번 못하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엘 갔다. 그는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주워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순진도 하셔라 그런다. 한국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면 친인척을 찾아내어 돈을 던져 놓고 도망간다는 것이다. 인정(?)이 넘치는 이야기다.
미국의 언론은 대통령이 "못해 먹겠다"고 했대도 대서특필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 입장이라도 국가의 체면에 관계되는 일은 스스로 덮어 버린다. 한국의 기관과 노동단체들이 맹렬한 집단이기주의로 돌변하여 국가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 가고있다. 이를 보고 대통령이 신세 한탄했다고 젊은 여성 방송인이 "그는 대통령이 되지않는 것이 좋았다." 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을 몰아 부치는 글이 신문에 실렸다. 물론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터넷의 젊은 독자들 반응 75%가 시원하다. 잘 썼다 라는 점이다. 그들 세대일까 대학의 학장을 잡아다가 머리를 잘나낸 학생들이, 그렇게 남을 죄지은 자로 단죄하고 돌을 던지는 이들이 모국에는 너무 많다는 말이다. 요즈음 30년 전 군사독재사절 신문에서 나서야할 사람들의 비겁한 침묵을 주시한다. 오히려 그 시절 바른 말을 하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이들이 지금 침묵하는 모습도 함께 떠올린다.
정말 근소한 표 차로 대통령이 된 부시 대통령은 그와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도 묵시적인 동조를 받고 있다. 그에게 전권을 준 이상 그의 팔다리를 묶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를 뽑아준 국민들은 이제 국가를 어떻게 도울까 그런 생각을 가져 달라고 요구하던 케네디가 오히려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대통령에 지나친 비평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이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 일게다.
비판 문화가 절정에 이른 것 같다. 웬만한 소시민도 비판 의식은 상당 수준에 이른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 인사나 언론들의 대안 제시 없는 비판이 국민들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 준다.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닌, 더구나 분단 된 나라에서 되새김 없는 비판은 자가당착이다.
모국의 30년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가요, 머리, 복장 상태까지도 간섭하는 절대자였다. 통치자가 훈육주임이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한숨쉬며 푸념한번 해도 언론인 지식인 젊은이들에게 지탄을 받고 바보가 된다. 집단이기의 힘을 법으로는 통제 불가능하여 결국 다수 국민들이 군사독재자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는 어렵게 얻어낸 자유라도 법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이 다민족이 엉켜 살아도 일사분란(一絲不亂)한 것은 통치자나 국민이 함께 법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법이 그들의 훈육 주임이다.
정이나 참을 수 없어 남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실어야겠다면 나는 정말 비판할 입장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보고 그래도 못 참겠거든 담배를 끊겠다. 하다 못해 집 앞을 청소하겠다. 거리의 휴지를 줍겠다. 그것도 어려우면 하루에 세 번은 남을 웃겨 주겠다. 남을 칭찬하겠다. 이런 성의들이 칼럼 말미에 실린다면 세상이 전보다 조금은 밝아질게다.
집단 이기심을 통제하려면 올바른 법의 실현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나마 우리 사회가 지탱되는 것은 법을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말없는 다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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