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장해제 요구 결의를 수용함으로써 전쟁 위기를 한 달간 지연시켰다.
이라크는 13일 유엔에 보낸 서한에서 안보리 결의 1441호를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라크에 드리워진 전쟁의 암운이 걷힌 것은 아니다.
전격 수용 배경 이라크의 결의 수용은 이미 예상됐다. 미국과 영국이 결의 수용 거부를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즉각 공격하겠다고 벼르는 상황에서 이라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랍권인 시리아를 포함해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만장일치로 결의를 채택하고, 형제국의 모임인 아랍연맹까지 결의 수용 압력을 가하는 등 국제사회의 여론도 완전히 기운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라크가 결의 수용 시한인 15일보다 이틀이나 앞서 수용 발표를 한 것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영국 BBC 방송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장 급한 불을 끄면서도 유연한 자세를 과시함으로써 체면을 세우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12일 이라크 의회가 만장일치로 결의를 거부한 지 하루 만에 후세인이 전격 수용 결정을 내린 것도 ‘평화를 위해 용단을 내린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환영과 냉소로 엇갈린 반응 대부분의 국가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라크전이 주변 지역으로 번질 것이라는 공포에 떨었던 아랍연맹은 “이라크가 평화를 향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안도하면서 “앞으로도 중동의 안정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라크의 결정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백악관은 “후세인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한에 담긴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폄하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이라크가 무사히 첫발을 내딛어 준 것을 환영하지만 후세인은 변덕스럽기로 악명이 높은 만큼 방심할 수 없다”고 한 자락을 깔았다.
전쟁의 덫 벗어날까 안보리 결의 1441호가 규정한 사찰 관련 시간표에 따르면 이라크는 다음 달 8일까지 화생방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개발 실태를 보고해야 한다.
보고 내용이 안보리를 통과하면 유엔 무기사찰단은 늦어도 다음 달 23일부터 본격 사찰을 재개하고, 내년 2월 21일까지 최종 사찰 결과를 보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절차가 원활히 진행돼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라크의 무장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업고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이라크의 결의 수용 거부를 은근히 기대했던 미국의 트집잡기와 압박이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가 미국이 만족할 만큼 무기사찰에 100% 협조한다는 보장도 없다. BBC 방송은 ‘본격적인 전쟁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이라크는 미ㆍ영의 덫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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