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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찬 호 (메이저리그 투수)
한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29) 선수는 미 스포츠계에 ‘코리안’ 돌풍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으로 미주 한인사회에도 큰 영향력을 끼친 스포츠 스타다.
지난 1994년 LA 다저스에 120만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이 된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올 2002년 시즌까지 8년간 역대 아시아 출신 투수로서는 통산 최다 승수(89승)를 올리며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우뚝 섰다. 메이저리그 데뷔 초 공을 던지기 전 모자를 벗고 주심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으로 미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박찬호는 ‘코리안 특급’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미국 스포츠 무대에서 ‘코리안’의 이름을 드높였다.
박찬호가 특유의 쾌속투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삼진아웃 시키는 모습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박찬호 신드롬을 일으켰고 수많은 한인동포들이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그의 승리 소식에 이민생활의 시름을 잊는 등 한인사회의 ‘청량제’ 역할을 했다.
공주 출생의 박찬호는 한양대 재학 시절 LA다저스에 스카웃 돼 마이너리그를 거쳐 96년 메이저리그 첫 선발승을 따내며 5승을 올린 후 97년 14승, 98년 15승, 99년 13승, 2000년 18승, 2001년 15승 등 5년 연속 두자리수 승수를 기록했으며 2001년에는 한인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박찬호는 이후 김병현에서 최희섭까지 후배 한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고 넓게는 박세리·최경주 등 다른 종목의 한인 선수들이 미국 스포츠계에서 영토를 넓히는데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LA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첫 해인 2002년 부상 등으로 부진한 한 해를 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레인저스의 홈구장이 있는 알링턴을 포함, 미 각 지역에서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는 많은 한인들의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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