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즈 퍼레이드 꽃차 탑승 이민 100년의 영웅들
김 영 옥 (예비역 대령)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미 육군의 전설적 군인으로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대표하는 이민사 영웅으로 선정된 김영옥(83) 예비역 대령은 여러 면에서 ‘영웅’의 호칭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김 대령은 미군 역사에 아시안 아메리칸의 이름을 드높인 장본인이다. 그는 미 육군 역사상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대대장을 역임하며 군 재직 기간동안 총 19개의 훈장을 수여,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아시아계 중 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1919년 LA에서 재미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군에 입대한 김 대령은 2차대전이 발발하자 미 보병 442연대 100대대 B중대 2소대장으로 참전, 이탈리아 전선에서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을 지휘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차대전 때의 활약으로 미국 특별무공훈장(DSC)과 은성무공훈장, 그리고 프랑스 십자훈장과 이탈리아 최고훈장을 받은 김 대령은 1951년부터 1년여간 한국전쟁에도 참전, 미 육군 제7사단 31보병연대 1대대를 이끌며 1·4후퇴 후 미 육군 31연대가 유엔군의 반격을 이끌게 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 또다시 특별무공훈장·은성무공훈장·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한국전 참전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너의 피는 한국인”이라는 부친의 말씀을 기억하며 “미국과 한국 양쪽 모두를 위해 싸웠다”는 김 대령은 52년 9월 다리 부상으로 전선을 떠났으나 그의 영웅적 행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대령은 1972년 군에서 예편한 뒤 지금까지 30여년을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에 적극 뛰어들어 커뮤니티의 영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대령은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적 봉사단체들인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와 한인청소년회관(KYCC)이 탄생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한미연합회(KAC)와 한미박물관(KAM) 등에 초기 설립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한인 등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상황은 내가 자라날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김 대령은 미주한인 100년의 역사 속에서 한인 젊은이들이 우러러 보며 본받을 수 있는 진정한 ‘영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김종하 기자>chris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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