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건너기는 쉽다. 6세기에서 10세기 사이 일본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반도에 있는 나라들과 교류를 나누며 선진 문물을 받아 들였다.
“동해는 지중해처럼 문명 전파에 기여했다”는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주장은 옳다. 20세기 후반 한반도가 남북으로 돼 있는 상황에서 북한 공작원들은 밤에 동해를 건너 일본에 상륙했다. 그들은 일본 내 한인사회를 파고들어 정보를 얻고 한국 유학생들을 유혹해 북한으로 보낸 후 간첩 교육을 시 켰다.
지난달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만났다. 이 회담을 통해 70년대 이후 북한이 13명의 일본인을 납치했으며 그중 5명이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납치된 인물 중에는 당시 13살짜리 소녀도 있다. 김정일은 공식적인 사과를 했지만 이 사실은 북한 방송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일본에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납북자 가족의 주장도 널리 소개됐다. 그럼에도 납치극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말 납치된 사람이 13명뿐일까. 8명은 어떻게 죽었나. 죽은 것으로 돼 있는 납북자 중 한 명이 살아 있다는 전 북한 공작원 이야기는 또 뭔가.
이와 함께 한국인들은 무섭다는 일제시대의 편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북한에 대한 분노가 다시 일고 있다. 한국전 이후 북한으로 납치된 500명의 한국인들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김정일이 적국 일본한테는 사과를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말이 없냐”는 것이 한국인들 생각이다. 그 와중에 북한에서도 반일 감정이 일고 있다. 일제 때 끌고 간 정신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납북자가 일본인이냐 아니냐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일본이 제2차 대전에서 져 만주를 잃었을 때 수많은 일본인들을 귀환시키느라 큰 소동이 벌어졌었다. 수년 후 이 때 남겨진 일본인 아동들이 중국 공산 정권 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일본인임이 확인된 아이들만 송환이 허용됐지만 돌아 온 아이들도 본토인들의 차별에 시달리며 적응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이상한 것은 일본이나 북한 모두 납치극이 벌어지기 전 북한으로 건너간 한국계 일본인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9년에서 1984년 사이 9만 명의 한국계 교포가 북송선을 탔으며 이들은 북한의 실상에 환멸을 느꼈지만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북한 정부로부터 불순 세력으로 찍혀 광산이나 황무지에서 중노동을 하며 일생을 보내야 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매년 북한에 헌금을 해야 했다. 이 돈이 북한 정권 유지에 큰 기여를 했다.
일본 시민들의 자녀와 손자들임에도 이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서는 현재 아무런 보도가 없다. 이들의 송환은 정치적 과제일 뿐 아니라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이누히코 요모타/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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