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의 대선을 앞으로 두달 남겨놓고 있는 한국에서는 날이 갈수록 대선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치현안이 모두 대선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는 없고 정쟁만 있는 혼돈상태에 빠졌다.
대선 구도도 처음에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로 가닥이 잡혔다가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불가론이 불거지면서 정몽준 후보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리무중인 것은 여론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의 지지성향이 지방색과 진보·보수 성향으로 대체적으로 갈려있긴 하지만 어떤 변수가 생기면 변화무쌍하게 판도가 바뀐다. 즉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너무도 잘 타기 때문에 한국의 선거는 바람선거가 되고 있다.
선거는 정책이나 리더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노풍이나 병풍처럼 바람을 잘 일으키고 또 잘 막아내는 것으로 결판이 난다.그러므로 이 바람을 따라 이합집산이 심하게 나타나는 때가 이 선거철이다.
정당은 정당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유리한 쪽으로 헤쳐 모인다.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념이나 정책, 원칙 따위는 팽개쳐 버리고 오직 이해관계만을 좇는다. 민주당의 신당바람과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려고 하는 JP가 대표적 케이스이다.
이해관계를 좇아 바람을 타는 사람들은 정치인들 뿐 아니라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레임덕으로 기강이 무너지면서 공무원들이 여야정당에 줄대기를 한다. 그래서 정부의 치부가 가장 많이 터지는 때도 대선 직전이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정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마저 이 편, 저 편으로 갈라져 난타전을 벌임으로써 선거바람은 더욱 거세게 분다.
그런데 바람은 한쪽으로만 부는 것이 아니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다가 갑작스런 기압 변화에 부딪히면 역풍이 되어 되돌아 온다. 민주당의 이인제 대세론이 노풍을 만나 순식간에 사그라져 버렸고 노풍이 약화되면서 정풍이 휩쓸고 있다. 한때 한나라당에 먹구름을 몰고 왔던 병풍은 이 바람을 일으켰던 장본인의 속임수가 드러나면서 오히려 정부여당쪽으로 몰아치는 역풍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규명되어야 할 의혹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병풍사건, 정부여당의 목을 죄는 북한 금품제공설, 공적자금문제, 정보보고 조작설은 대선 전에 진상이 규명됨으로써 국민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진실 규명은 도외시 된 채 정치적 공방에만 이용되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들을 규명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도 당사자의 일방인 이상 공정한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은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그저 더 거센 바람으로 상대방을 휩쓸려고만 하는데 이 바람이 저절로 일어나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과거 영호남의 지역감정에 불을 붙인 것도 정치인들이었고 이번 대선의 바람들이 모두 그렇다.
바람을 일으켜서 성공하면 이득을 보고 실패하면 역풍을 받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 바람을 일으키는 목적이 뻔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바람에 놀아난다면 속임수에 당하고 마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앞으로 2개월의 시간은 짧다면 짧고 볼 수도 있고 길다면 길다고 볼 수도 있다. 대선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이 사이에 또 어떤 바람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바람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미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국민들은 정부도 보았고 여당도 보았고 야당도 보았다. 그랬으니 그것으로 판단하면 된다. 앞으로 두달 동안 벌어질 연극을 보고 대선 판정을 내린다면 앞으로 5년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지난번 미국 대선 때 부시와 고어간에 벌어졌던 엎치락 뒤치락한 선거싸움처럼 정치인들은 자기의 이득에만 전념한다. 인내심을 갖고 자중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국민들이 정치적 냄비 근성을 버릴 수만 있다면 정치바람을 일으키는 후보가 오히려 역풍으로 쓰러지는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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