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유물 미국 부호들의 대저택
▶ <윤병희>
와일더스타인은 독일어로 ‘험상스런 사람의 바위’라는 뜻이다. 와일더스타인 저택을 사기 위해 허드슨강으로 배를 타고 들어갔던 토마스 수클리(Thomas Suckley)가 암벽을 보고서 첫 마디로 와일더스타인(Wilderstein)이라고 불렀다. 이 저택은 처음에는 사각형으로 지어 상자갑 같았으나 경치가 너무 좋아 32에이커 땅을 구입, 증축을 하였다.
수클리의 아버지는 영국에서 이민온 감리교인으로서 아이보리 제품을 무역해 큰 부자가 되었다. 이 수클리 가문은 빅크만 리빙스톤 가문과 친척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자식을 많이 둔 리빙스톤가 자손들이 여러 집안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자집 며느리로 많이 진출했다.
원래는 2층집이었으나 로버트 수클리(혹자는 서클리라고 발음하기도 한다)가 3층을 올리고 둥근 탑을 추가, 멀리 허드슨 강물이 보이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나무로 지어진 저택은 100년 이상 세월이 흘러 이곳의 험한 기후에 의해 많이 손상됐다. 이에따라 저택 재건(Restore)을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집안 안내를 하는가 하면 집 뒤의 방은 현재 세를 놓아서 수입으로 삼고 있다.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의 건축술을 항상 흠모하던 수클리는 농장으로는 적당치 않다는 충고에 따라 이 저택을 증개축하게 되었다. 맨하탄의 센트럴팍과 브루클린에 있는 프로스펙트 팍을 디자인한 캘버트 복쓰가 정원 조성과 관리를 맡아서 했다.실내에 들어가면 서재의 천정이 비가 새어 처음의 무늬가 묘하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묘한 디자인이 많아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실내 디자인은 주로 조셉 티파니가 직접하였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임에도 이층을 옥상으로 만들어 눈이 녹아 흘러들어오는 것을 방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천정에 그려진 무늬만은 그대로 살리려고 조심스럽게 개축을 하고 있다.
1852년 토마스 수클리는 1에이커당 150달러에 땅을 구입하기로 사인하였다.
이곳 집 앞에 많이 심어놓은 사과나무에 올라가서 놀던 12살짜리 아이가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874년에 이제는 외아들이 된 로버트 수클리는 감리교 학교인 웨슬레이안대학에 입학, 1878년에 졸업했다. 그의 여동생 메리과 동생 루스틴이 죽어서 수클리 가문의 모든 상속이 로버트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이웃의 죽마지우인 헨리 올린과 그의 이웃인 리빙스톤의 손녀 엘리자베스 몽고메리와 사귀다 결혼, 또 다른 리빙스톤의 가족이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몽고메리는 1세 이민온 로버트 리빙스톤의 7대 손녀딸이다.
부자집 자녀들은 좋은 학교, 좋은 환경을 가졌으나 이상하게도 백수가 많았다. 로버트 수클리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직업을 갖지 않았다. 어느 모임 신청서의 직업난에 ‘Gentleman’이라고 적어 Gentleman이라는 직업도 있느냐고 묻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직업”이라고 답했다 한다.
이 저택의 주인인 로버트 수클리도 할일이 없어 아버지에게서 일년에 5,000달러씩 받아 스위스에서 지내다 귀국했다. 그러나 이 저택의 난방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겨울에는 뉴저지에서 살았다. 이후 미주리주에 있는 전기기술자를 불러와 콘에디슨사와 함께 발전기를 설치하고 스팀 히팅으로 문제를 풀었다.
저택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이곳 고등학교의 역사선생이며 이 저택 연구가여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로버트 수클리는 자녀를 많이 두었다. 베티라는 딸은 리틀톤 중위와 결혼했으나 간호사인 데이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몇 마일 떨어진 스프링우드 저택(프랭클린 루즈벨트 저택)이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에 놀러가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서로가 먼 친척간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결정했던 놀만디 상륙작전의 D-Day를 데이지가 일기에 모두 적어 놓았다.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가름했을 수도 있는 엄청난 비밀을 비 정부요원에게 발설한 사실이 대통령 사망 후 영국에서 폭로됐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발표된 적이 없다.
데이지는 87세까지 운전을 했다. 문앞에 가서 편지를 가져오는 것도 자동차를 이용했다. 그는 이곳의 탑 3층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 때까지 운전면허증 소지자였다.
▲가는 길
주소 : Wilderstein Preservation, 330 Morton Road(P.O. Box 383), Rheinbeck, N.Y. 12572
전화 : 845-876-4818
뉴욕주 Thruway I-87 North로 가다 Exit 19로 나간다. 28 West(209 North)로 가다 199 North가 되면 계속 Rheincliff Bridge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서 9-G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다시 Rt. 9을 만나면 우측 방향으로 간다. Rt. 308을 만나서 또 오른쪽으로 약 9마일 숲속으로 달리면 오른쪽 입구에 Wilderstein의 표지가 서 있다(308을 가다가 자연히 Rt. 85가 된다).
결혼사진을 원하는 사람은 미리 전화해야 한다. 실내구경 하려면 입장료가 7달러. 실내를 안 보면 공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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