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을 통해 보여준 ‘붉은 악마’의 예기치 못했던 단결력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역사적으로 우리는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시련을 겪어왔고 오랫동안 열강들의 간섭을 직·간접으로 받아왔다. 그 결과로 인한 분단의 서러움과 정치적, 경제적 외세의 압력에 대한 분노가 모든 국민을 거리로 나서게 한 이유 중의 하나로 보아도 될 것이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을 해보면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을 느끼며 한국의 어두운 앞날에 자포자기한 사람들,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들, 노사분규로 인해 갈등이 심화된 노동자와 기업인, 그리고 심각한 취업난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온 사람들의 억눌렀던 분노 표출이 축구 열기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공, 부와 권세를 얻어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집단으로부터 고립되어 고독을 느끼게 된다. 크게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리고 작게는 가정과 이웃으로부터 분리되어 오로지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 향유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만의 행복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공동체 이익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들을 발견할 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집단 이기주의가 주는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월드컵 열기 속에 빠져들어 대중과 하나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혹은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교훈을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라는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 자기 자신의 완성으로만은 부족하며 전체와의 연대가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미국 이민사회에서도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응원을 펼침으로써 한국인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고국에 대한 그리움, 남의 나라에서 받는 차별에 대한 불만, 자랑스럽지 못한 조국의 정치현실,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부모와 자녀들간의 마찰 등의 심리적 불안 속에서 소속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대한민국을 외치며 자기의 소속감을 열망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번에 보여준 전 국민적인 단결심과 그 에너지가 앞으로 어떻게 이용될지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아니면 광고주들의 상업용으로 더 많이 연구되고 이용되겠지만 이러한 단결심이 배타적 국수주의로 흘러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세계화를 자랑하는 현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보여준 가장 희망적인 일은 극도의 자기 중심적 인생관에서 벗어나 이웃을 보고 크게는 전체를 인식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제 달라질 한국인의 자랑스런 모습을 예고하는 것 같다. 월드컵이 막을 내린 지금 우리는 ‘우리’라는 공동체로부터 한 개인으로 다시 분리, 독립, 성숙해야 한다. 절반의 사과의 절반의 사과가 합치면 한 개의 사과가 아니라 두개의 절반이다. 성숙한 개인이라도 그 자체로 약점과 공허를 느끼게 마련이다. 성숙한 개인이 모여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공동체를 만들 때 진정한 일등 국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