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캠프에 갔다. 이곳 학군은 7학년부터가 중학생이라 초등학교에서는 마지막으로 갖는 행사였다. 게다가 온 학교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니 아들아이는 열흘 전부터 흥분해서 수선을 떨어댔다.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내용물을 점검하고 가방에 넣고 나니 가방은 터질 것 같고 남편이 권하는 여행가방은 너무 무지막지하게 커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동네 다른 아이들 집을 몇 군데나 다니며 조사(?)를 했다. 행여 너무 큰 가방을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었고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이 뚱뚱한 가방을 보내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결국 뚱뚱한 가방에 들어간 슬리핑백을 쓰레기 봉지에 옮겨 두 개의 보따리를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떠나기 전날까지 남편은 손전등 쓰는 것을 가르쳐주고, 슬리핑 백 접는 것을 가르쳐주고, 일회용 카메라를 챙겨주며 내내 잔소리를 했다. 아들아이가 남편보다 훨씬 더 매끈하게 슬리핑백을 접을 줄 안다는 것과 일회용 카메라를 수도 없이 사용해 보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는 혼자 돌아서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아이에게 다시 한번 다가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자 내 어깨에 팔을 척 올려놓는데 거의 키가 나만큼이나 컸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두 번째 버스에 올라간 아이는 창가에 앉아 나를 내다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이제 열 두 살 된 내 아들아이가 어느새 내 품안에서 살며시 몸을 빼내어 혼자 날아볼 준비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잘 커버린 아이를 눈부시게 바라보며 어깨가 아파 올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탄 버스가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서 있다가 비로소 차에 올랐다.
13년 전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때까지 안락하고 자유롭던 내 청춘이 막을 내린 듯 그저 힘들고 어려웠었다. 아이가 아파서 떼를 쓰며 울어댈 때면 엄마인 나는 아프지도 않은데도 세상이 다 귀찮고 잠 안자고 보채는 밤엔 피곤해서 짜증스럽고, 부엌에서 김치를 담그다가 보행기에 앉아 지켜보던 아이가 재빠르게 배추 잎 하나를 날치기해서 도망가면 고함을 치며 쫓아가서 빼앗아 오고 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왜 사람은 바로 눈앞에, 손안에 있는 현재의 일들을 즐기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던 그때는 분명 한없는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나날들이었다. 분명 지금도 나와 남편의 하루하루는 아이들이 있기에 훨씬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돌이켜 지나간 일들만을 추억하며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의 귀중함을 모르고 산다.
회사에 있던 남편이 내가 보낸 이메일을 읽고 나더니 전화를 해서 ‘당신 무척 서운한가보네.’ 하며 놀린다. 두 손으로 아이의 허리를 잡고 걸음마를 시키던 그때처럼,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아이의 손을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그 후엔 기도로 도와주는 일만이 부모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의 캠프 스케줄을 보면서 지금쯤 가방을 풀고 침대를 정리할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