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한 시사평론가가 칼럼니스트의 정치적 중립은 허구라는 선언을 했다. 온 나라 안팎이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터라 그의 발언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정치적 중립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칼럼니스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로 그는 한동안 MBC 100분 토론 진행을 맡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동아일보 절독기를 발표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립을 과시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은 결국 양비론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을 모두 매도해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고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담론의 영역에서도 상당 정도 무책임을 조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칼럼니스트 개인은 정치적으로 중립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상이한 시각과 논리 사이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어느 칼럼이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 혹은 불리할 때 독자들은 사실적 근거와 논리적 정당성을 따져보아 취사선택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논리가 아니라, 각기 다른 의견이나 주장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일 여건이 마련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있는 안티조선 운동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다. 조선일보가 나쁘니 이 신문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민족의 정론지로 인식되어 이 신문의 공과 과를 밝혀 정확한 자리 매김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문의 정체성이 마음에 안 드는 독자는 다른 신문을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언론들이 지금까지처럼 은밀하게 특정 후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느니 아예 사설을 통해 그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실 보도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특정 후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면서 사실 보도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선거철이면 공화당 지지를 밝히는 시카고 트리뷴이나 민주당 지지를 밝히는 선타임스에 대해 아무도 편파 보도라고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독자들은 주관적 견해와 사실 보도를 혼동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한국의 언론들이 특정 후보나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란 현시점에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언론이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하거나, 독자들을 계도하던 시절은 지났다.
독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원하고, 그 중에서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려 할 것이다. 물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역사를 발전시켜 온 인간의 선의와 양식을 믿어보는 수밖에.
유시민씨가 칼럼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힌 일은 월드컵을 통해 드러난 한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한국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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