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하나되자고 벌인 축구 잔치 끝에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린 이탈리아. 팔레르모 (Palermo)의 주인 안토니 파나라(Anthony Fanara)는 자신도 이태리 사람이지만 깨끗하게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포들에 대해 요즘 할 말이 많다. 팔레르모.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다. 정훈희였나, 윤복희였나. 기억에도 아득하지만 해마다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주도 팔레르모에서 열리는 국제 가요제에서 우리 가수들은 목이 터져라 열창을 했고 개선장군처럼 좋은 성적을 안고 돌아오곤 했었다.
빨강, 하양, 초록, 삼색의 차양으로 꾸며진 팔레르모의 입구에는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그리 환상적일 것도 없는 실내지만 벽에 그려 넣은 벽화는 남부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또 하나 마음을 이탈리아로 보내는 것은 꿍짝거리는 아코디언 소리. 올해 75세인 놈 판토(Norm Panto) 할아버지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다니며 ‘돌아오라 소렌토로’, ‘푸니쿨라’ 등, 귀에 익은 나폴리 민요들을 감미롭게 연주하고 흥이 나면 노래까지 목청껏 부르면서 흥을 돋군다. (일요일 저녁때만 공연한다.)
테이블에 앉기가 무섭게 갖다 안기는 것은 피자 로자(Pizza Rosa). 토마토 소스에 페타, 모짜렐라, 파미지아노 세 가지 치즈를 듬뿍 얹은 것인데 맛이 기막히다. 맘에 든다면 따로 주문해서 드시길. 꼴뚜기 튀김(Fried Calamari)은 겉의 튀김옷은 바삭바삭, 안은 아직 말랑말랑, 아주 단순한 요리지만 정말 제대로 한다 싶다. 치즈를 듬뿍 쓴 볼로냐 스타일의 라자냐 (Lasagna Bolognese), 칼국수처럼 굵직한 페추치니를 크림 소스로 무쳐 새우까지 얹은 스캄피 알라 베키 (Scampi Alla Becky), 깔끔한 맛의 링귀니 봉골레 (LInguini With Clams) 등 팔레르모의 파스타는 가장 클래식한 메뉴들이지만 무엇보다 맛있고 양도 푸짐하다. 수프나 샐러드, 마늘 빵을 마구 퍼주는 게 우리 나라 시골 인심과 비슷하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곁들여 조리한 가지 요리(Melanazane Alla Parmigiana)도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송아지 요리도 파미지안 스타일, 밀라노 스타일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두꺼운 반죽에 신선한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갖가지 웃기를 얹은 피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맛. 반죽에서부터 소스 만들기까지 모든 조리 과정을 처음부터 다 한다고 한다. 인심 좋은 주인 안토니는 한국일보 기사를 읽고 온 독자들에게는 티라미수, 카놀리 등 맛있는 디저트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지윤 객원기자>
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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