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진출을 목전에 두고 독일에 0-1로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에퀴터블 빌딩 주차장에 모여 새벽 이슬을 맞으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냈던 수천명의 LA 붉은 악마들은 ‘아쉽다’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조용히 자리를 떴다. 지난 21일 밤 스페인전에서 극적인 승부차기 끝에 승리, 4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수만 인파가 한인타운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합창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월드컵 첫 승’이란 지상과제를 훌쩍 뛰어 넘어 4강 신화를 일궈내고 마침내 ‘요코하마로 가자’라는 커다란 새 목표가 생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대가 너무 커진 탓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억울해 하거나 선수들의 경기내용을 문제삼지 않았고 오히려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후회 없는 일전을 치렀다’ ‘한국 축구의 저력을 충분히 과시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패자의 궤변이 아니라 만족과 보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세련된 여유임이 틀림없었다.
한인사회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많은 것을 이웃들에게 보여줬고 나름대로 수확도 컸다.
뜻이 하나로 모이면 수만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엄청난 힘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 경기가 끝난 뒤 주변을 청소하고 질서 있는 환호와 응원을 통해 이곳의 주인이 우리임을 과시한 것, 붉은 악마 티셔츠를 타인종들에게도 나눠주며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민족이라는 것, 우리가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 1세와 2세간의 벽을 이번 기회에 허물어 버렸다는 것, 2세들에게 민족의 긍지를 심어줬다는 것 등 일일이 손가락을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뜨거운 열기가 넘쳐흘렀던 응원현장을 취재했던 주류언론 기자들이 한결같이 한인사회의 결집력과 성숙된 질서의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도 우리가 그만큼 뚜렷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제 열광과 환호 속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를 추슬러야 할 때다.
월드컵의 최면에서 깨어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월드컵 기간에 우리가 얻은 교훈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정리해야 한다. 밤잠을 설치며 한 목소리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얻은 한민족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훗날 소중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월드컵을 통해 얻게 된 기회가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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