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조금 지나서 가게로 가는 차안에서 흘러나온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방송은 끝내 우리 부부의 눈물을 다시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추어서 방송이 되는지... 그 기도문은 우리 집 화장실 벽에 14년 동안 붙여져 있는 나의 두 아들을 위한 기도문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 막 둘째아들을 배웅하고 가게로 가는 차안에서 그 기도문을 들으면서 이민 와서 오늘까지 14년 동안의 세월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엊그제 소위로 임관한 둘째가 그의 첫 임지로 차를 몰고 혼자 먼길을 떠난 것이다.
지금은 중위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큰아들이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지금처럼 첫 임지로 차를 몰고 먼길을 떠날 때는 나만 울었지 남편은 울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은 새벽부터 차를 닦아주고 점검하고 하던 남편은 끝내 둘째가 막 출발하자 거라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둘째의 차가 코너를 돌아 사라진 뒤 돌아본 남편은 소리 죽여 통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26년 동안 살면서 두 번째 본 남편의 우는 모습이었다. 내가 잘 운다고 맨 날 핀잔만 주더니... 거라지 안에서 부부가 얼싸안고 우는 건 영화에서나 보았지 나와 남편이 주인공이 될 줄이야.
“이젠 정말 우리 둘만 남았군”
한참 후 남편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겨우 한마디했다.
“이제부터는 가게에만 신경쓰고 우리 둘이 열심히 살아요”
“우리 서로 싸우지 말자”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저세상에 가신 친정 아버지도 우리가 미국 이민 올 때 바로 내 남편의 심정으로 김포공항에서 나를 보내셨겠지. 친정 아버지와 맥아더 장군과의 인연이 거의 50년이 지나 외손주에게 이어지는가 싶다.
6.25때 이전부터 아버지가 사셨던 회현동 집은 바로 옆에 미군 장교 아파트가 있어서 내가 어릴때부터 배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자를 쓴 미군의 모습은 나에겐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이따금 배 뒤집은(?) 모자를 쓴 미군들이 비탈진 둔덕을 올라와 우리 집 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면 아버지는 이상한 말로 그들과 이야기하곤 하셨다.
큰아들이 웨스트포인트를 가고 거의 50년전 회현동에서 만나곤 했던 미군장교들처럼 배 뒤집은(?) 모자를 쓰게 됐을 때만 해도 둘째아이까지 그 모자를 쓸 줄은 짐작을 하지 않았었다. 아니 너무 힘든 길이었기에 다른 평범한 길을 원한 것이 진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둘째도 그 길을 택했다.
식탁 위에 무엇을 남겨 두었기에 이건 안가져가냐고 했더니 엄마가 가지세요 한다. 아이가 떠나고 들어와서 펼쳐보니 손바닥만한 크기의 앨범같이 생긴 아들이 만든 것이었다. 시화집이랄까.
조심스레 표지를 넘기면서 보니 그 안에는 몇 가지 아들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내가 여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고 가끔 애용하고 애송하는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숲 속에 두 길이 있었습니다...(중략) 한 길은 다니지 않은 길...(중략) 나는 그 다니지 않은 길을 택하여서...”
다시 눈물이 쏟아진다. 아들의 선물. 가지 않은 길. 주변에서 들 그랬다. 우리는 “미국 이민 와서 두 아들 모두 군대 보냈다고...” 한국에 살았어도 우리 두 아들은 군대 갔을 거라고 나는 대답한다. 남편과 나는 두 아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받고 산다. 곧게 바르게 잘 자라준 두 아이. 자꾸 쏟아지는 눈물 옆에서 또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미군장교의 엄마는 그러는 거 아냐!”
그래, 이 엄마는 미국 대통령의 엄마는 힘들겠지만 미국 대통령의 할머니는 될 수 있겠지? 그땐 미국 대통령의 할머니는 그러는 게 아니라고 안 그랬다고 누군가가 그럴 거다 그지?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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