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5일은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기록될 역사적인 날이었다. PGA투어 최초의 한인골퍼 최경주가 뉴올리언스 컴팩클래식에서 기념비적 우승을 따낸 것. 박세리를 비롯한 LPGA 코리안 낭자군이 잇달아 보내오는 승전보에 익숙한 한국이었지만 최경주의 우승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도대체 한국남자선수가 세계 최고의 PGA투어 무대에서 우승하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
그런데 최경주는 해냈다. 맨 손으로, 피와 땀, 눈물을 밑천 삼아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을 이뤄냈다. 사실 최경주가 처음 PGA투어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일부에선 ‘일본에서 몇 번 이겼다고 간이 부었다’고 빈정댔다고 한다. 그 정도로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곳이 PGA투어였다. 그런데 도전 2년 반만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A급 대회를 석권한 것이다.
최경주는 미국에 진출할 때 10년 매스터플랜을 만들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기량을 연마, 10년째에는 우승에 도전한다는 것. 준비과정으로 3년을 잡았다. 고행의 연속이던 2000년 루키시즌을 겪으면서 최경주는 어차피 각오하고 나선 것이기에 모든 것을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기회가 날 때마다 PGA투어의 모든 것이 너무도 좋다며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첫 해 무수한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면서 최경주는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투어 2년차인 2001년은 이같은 자신감을 확인시켜준 해였다. 첫 스타트인 투산오픈에서 생애 2번째 탑10인 공동 5위로 출발하는 등 첫 12번의 출장에서 10번 컷오프를 넘어서며 5월도 지나기 전에 상금 40만달러를 넘어서 일찌감치 다음해 투어카드를 확보했다. 샷에서 질적인 성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0년 장기계획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우승시기는 5년까지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올해 시즌을 시작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경주는 아직도 우승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의 게임은 이미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소니오픈에서 공동 7위로 또 다시 탑10 출발을 한 최경주는 나머지 서부지역 대회에선 다소 부진했으나 4월 첫 주 벨사우스 클래식에서 공동 8위를 시작한 뒤 그린스보로 클래식(공동 7위)을 거쳐 컴팩 클래식에서 마침내 대업을 완성했다. 처음 10년으로 잡았던 목표를 2년 반만에 이뤄낸 것이다.
우승이 주변 상황을 180도 바꿔놓았지만 최경주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지난해 초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한순간 화려하게 빛난 뒤 스러지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꾸준하게 한결같은 ‘고목나무’같은 선수가 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최경주에게 우승은 종착역이 아니라 제2의 시작이다.<끝><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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