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한미식품상협회 차윤성(52, 풀러튼 거주) 회장이 오렌지시 소재 ABC 리커 & 미니마트를 매입한 것은 92년 11월.
사우스센트럴 LA에서 가구점과 침대 제조공장을 운영했던 차 회장이 그 곳을 등지고 오렌지카운티에 업소를 마련, 새로운 삶의 기틀을 다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4·29폭동 때문이었다.
그는 그 해 4월29일 발생한 폭동으로 비록 재산상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곳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켜봐야 언젠가 폭도들의 방화에 사업이 불에 타는 종이처럼 한줌의 재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업소는 성업중이다. 하지만 그는 폭동 당시 폭도들이 이곳 가게들을 불지르고 약탈을 자행하고 난 후, 현장에 나타난 피해자들의 이글거리는 눈빛, 꽉 쥔 두 주먹,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노를 잊을 수가 없다.
폭동은 차 회장처럼 일부 한인들이 오렌지카운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케 했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차 회장은 "폭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며 "폭동은 일할 의욕을 빼앗아 가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람들은 LA에서는 지역사회 주민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차 회장은 OC를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한미연합회(KAC) 찰스 김 사무국장은 "폭동은 근본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한인들의 소망을 산산이 부수뜨렸다"며 "이로 인해 많은 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었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감을 버렸다"고 말했다. 연방센서스국 발표에 따르면 2000년 현재 OC 거주 한인인구는 5만5,000여명으로 10년 전과 비교, 48%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 풀러튼, 어바인, 라팔마등 범죄율이 낮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도시의 한인 인구는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OC 한인인구 증가가 전적으로 폭동 때문이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은 아니다. 소득 증가와 더불어 쾌적한 삶의 환경을 찾아 OC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폭동이 OC로 일부 한인들의 이주를 부추겼을 것이라는 추론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칼스테이트 LA 사회학과 유의영 교수는 "폭동으로 업소가 전소 당한 한인들 중 아직도 업소 문을 열지 못한 사람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도 있다"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오렌지카운티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동이 발생한지 어제(29일)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폭동 피해자로 OC에 정착한 한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 인베스트먼트’ 가든그로브 지점의 마이클 방씨는 "한인 폭동피해자들 가운데 정부로부터 낮은 금리의 론을 얻어 OC에서 새로 사업체를 오픈했지만, 심리적으로 압박 받은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게 업소를 매입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동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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