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일의 시작 준비를 챙기다 보면 ‘부탁’이 거의 전부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상사의 말, 짜증나는 손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종업원의 말, 아들 딸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부모의 말. 부탁으로 아침 문을 열고 부탁으로 저녁 문을 닫는다. 다름 아닌 긴장과 불안의 원인이 이 때나 저 때나 등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건 불안에 비례하여 불상의 크기도 달라지고 종교집단의 부피도 달라진다. 무엇이든지 매달려보고 싶은 불안심리는 불안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출입구를 탈출구라고 부른다.
현대의 생활은 긴장의 무대이다. 넥타이 하나도 긴장으로 그 모양새를 지켜야 하고, 신발 끈 하나에도 담겨 있어야 하는 긴장이 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다듬는 여인도 긴장을 품고 화장을 한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현대사회는 긴장 투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사람에 비하여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 우리가 식당에 가면 먹고 먹어도 남거나 또 달라면 또 주는 푸짐한 공짜 반찬에 곰탕그릇도 반 항아리만큼이나 크고 비빔밥 그릇도 양푼만큼이나 크다.
그 옆에는 누가 있건 말건 나사를 다 풀어놓고 양념으로 호기를 듬뿍 넣어 큰소리로 떠들어도 어느 누가 예의에 벗어난다고 굳이 탓하지 않고 넘어가 준다. 일본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두 번 구경이나 할까 말까 하는 잔칫상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고 매주, 매달 돌아가면서 구역예배를 보고 작은 모임도 차리는 상만큼은 푸짐하고 크게 한다. 긴장을 풀어내는 한 방법이다.
일본식당에 가서 보자. 병자 아니고서야 먹다가 남기는 것이 없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턱없이 모자라게 처음부터 적게 준다. 밥그릇도 공기요, 반찬그릇도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종지뿐이다. 먹는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절제하고 억누르기만 하는 사회생활은 긴장이고 불안의 씨다. 높고 높은 하늘만큼 물가가 비싼 생활비에다 사는 공간이라고는 점점 닭장만큼 작아지는 집에서 일본사람들은 참으로 잘 견디며 산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작고 소형으로 만들어내야 하고 그것들이 들어앉을 자리도 잘 짜놓고 정리도 부지런히 잘 해야 한다. 그것이 상품으로 출세하여 대형에 눌려있던 서양사람에게 히트를 쳤지만 작게 짜여지는 분업화 사회란 원칙만이 있다. 일본사람은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벗어날 생각도 안 한다.
원래 유교사상이 없이 집단주의 사상만 있고 봉건적인 충성심만 있는 일본에서는 원칙이 명예이고 원칙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는 것만이 이들의 예의다. 이런 것이 일본사람들의 자존심일지는 몰라도 이들은 이러한 긴장과 불안을 우리처럼 풀어버릴 길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면 갈수록 두꺼워지는 현대의 원칙에서 긴장을 배우며 커 가는 가엾은 손녀가 셋이 있어 궁리 끝에 손녀들의 손을 잡고 도시 안의 동물원을 찾아간다. 질서는 있어도 짜여진 원칙에서 살지 않는 자연 속에서 긴장을 고수하지 않는 동물들을 보여주려고 도시 안의 동물원에 간다. 그들의 모습은 바보 같으면서도 자연스럽다.
그런 행동이 우리를 자연처럼 평화스럽게 해 주며 긴장으로부터의 찌그러진 찬 미소가 아니라 목화 터지는 웃음을 한 상 차려준다. 자연은 인간에게 부탁하지도 않고 인간의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있는 것은 다만 자유와 질서, 그리고 순응이지 부탁이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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