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의 사상 첫 우승으로 끝난 ‘3월의 광란(March Madness)’ NCAA 토너먼트.
올 대학농구 토너먼트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메릴랜드의 스타가드 후안 딕슨은 1일 인디애나와의 결승에서 무려 20분간 만우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첫 10분간 11점을 올린 뒤 다음 20분간 단 1점도 올리지 못하며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딕슨은 팀이 그를 가장 필요해 할 때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며 되살아났다. 42대44로 역전을 당하자마자 회심의 3점슛을 작렬시켜 패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메릴랜드는 결국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딕슨의 18득점에 힘입어 인디애나를 64대52로 제압, 챔피언의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NCAA 토너먼트 역사에 기리 남을 역대 최정상급 퍼포먼스였다.
자유투 라인에만 서면 “내탓이오, 내탓이오” 가슴을 두 번 치는 딕슨. 그의 가슴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딕슨은 고비 때마다 마약 때문에 세상을 떠난 부모를 생각한다고.
딕슨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화니타가 화장실에서 헤로인을 주사로 맞는 장면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 필 딕슨도 감옥살이를 자주하던 마약중독자였고, 둘은 결국 에이즈(AIDS)에 걸려 딕슨이 하이스쿨에 다니던 시절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딕슨은 그 어린 나이에도 결코 볼티모어 빈민촌의 험난한 세상에 빨려들지 않았다.
농구 커리어도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6피트3인치 신장에 체중이 150파운드(67.5kg) 불과한 딕슨에 장학금을 제의한 대학은 많지 않았다. “너무 약해 절대 통할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딕슨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했다.
빼빼 마른 딕슨은 대학 첫 해 단 한 게임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경기는 벤치에서 구경만 했다. 이어 10파운드를 더한 2학년 때도 주전 라인업에는 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메릴랜드 통산 최다 득점기록을 세우며 메릴랜드의 사상 첫 우승을 일궈냈다.
“작지만 약하지는 않다”고 항상 말하는 딕슨은 우승이 확정되자 달려가 게리 윌리엄스 감독을 부둥켜 안았다. “믿고 내게 기회를 준 감독에게 너무 고맙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68년 메릴랜드를 졸업한 윌리엄스 감독에게도 모교를 사상 첫 우승으로 이끈 감격의 순간이었다. 마약 스캔들에 휩싸여 바닥에 깔려 있던 모교 농구를 살리기 위해 돌아온 그는 결국 13년만에 모교를 대학농구 정상에 올려놨다.
타이슨 챈들러, 사가나 잡, 에디 커리 등 하이스쿨 스타들이 NBA로 직행, 재미없을 것이라던 2002 시즌. 딕슨의 ‘인간승리’와 윌리엄스의 ‘모교 사랑’ 스토리는 이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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