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한 마리가 덫에 걸렸다.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간신히자유의 몸이 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꼬리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혼자 굴속에서 숨어 지냈다. 하지만 상처가 다 낫고 나서도밖에 나가 돌아다닐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다른 여우들 보기가 창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가지꾀를 생각해 낸 여우는 의기양양하게 동료들 틈으로 다시 돌아갔다.
"야, 너 그동안 어디 있었니?" 친구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그 여우를
보자 이렇게 물어왔다.

"응, 성형수술 좀 하고 왔다" 여우는
친구들에게 꼬리 잘린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랑하였다. 다른 여우들이 그런성형수술도 있냐며 묻자 그 여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사실 꼬리라는 게 말이야, 아주 쓸모가 없거든.
꼬리가 있으면 여름에 덥기나 하고, 이, 벼룩, 진드기 같은 놈들 때문에
위생상으로도 안 좋고, 사냥꾼이나 사냥개들을 피해 도망칠 때 속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꼬리가 길면 촌스러워 보이거든!"

그럴듯한 설명에 혹한 여우들은 최신 유행에 뒤질세라 너도나도 앞 다투어
꼬리를 자르겠다고 나섰다. 이상은 ‘파라독스 이솝우화’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이다.

이 글을 접한 후 나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형사회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늘 성형수술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는사람으로 성형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구실을 한다. 환자들을 대하면서어떤 성형을 원하는가, 성형수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으로 현재 경제와문화의 흐름을 가늠하고, 세상에 대한 잣대를 세우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이다.

경제력의 향상으로 삶을 향유할 여유가 늘어남에 따라 성형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연예인이나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생각되던 성형수술이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제 성형수술은교통사고나 선천성 기형, 질병 등으로 잘못된 모습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들지 않는 부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신비의 의학’으로 둔갑하였다.

물론 이런 성형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컴플렉스를 이기고 자신감을 얻는데 도움을줄 수 있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소극적인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으며,이는 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나칠 경우, 성형수술에대한 무분별한 집착에 따른 부작용이나 후유증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성형전문가이다. 여러번 몸소 성형수술을 체험하면서 소위 ‘산 지식’을 습득하여 자칭 성형전문가의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성지에 나오는 광고성 기사를 탐독하거나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서 전해지는 얄팍한 상식이 성형지식으로 자리잡는 경우도허다하다.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론이 무성한 가운데 성형수술은 싫든 좋든 현대인이 낳은문화적 소산이며, 점차 다른 의학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있다.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성형수술을 고려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수술 전에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분별하고 과도한 성형은자긍심이 아닌 주체성의 상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꼬리 잘린 ‘성형전문가’
여우의 변죽에 현혹되어 덩달아 꼬리를 잘라버리는 우(遇)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