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엄마가 제발 다른 엄마들처럼 한복을 입어 주었으면 했다. 뚱뚱한 몸매에 첨단 가는 양장을 하고 우리 학교에 나타나면 나는 숨고 싶었다. 여학교 시절 학교대표 정구선수였던 때문인지 엄마는 운동선수답게 체격이 당당하셨고, 그때 그때 유행하는 원피스 혹은 투피스를 맵시 나게 입으셨다.
여덟의 자식을 낳고 어쩔 수 없이 뚱뚱해지셨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서양의 코르셋으로 허리 조이기를 하셨고, 우리들은 엄마 허리가 다 잘록하도록 코르셋을 열심히 댕기기까지 했다. 옷에 맞추어 핸드백과 구두도 어울리게 들고서 집을 나서는 엄마를 보는 건 선망이기보다는 되도록 길거리서 엄마를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엄마가 한복을 기피하신 데는 이유가 있으신 것 같다. 몸집이 크고 뚱뚱하신 체격에 한복은 더 부풀려 보일 것이고, 그런 저런 이유로 엄마 스스로 양장이 훨씬 더 어울린다고 믿으신 것 같다. 또는 신여성이고자 하는 마음 깊숙한 소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딸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양장을 혐오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는 우리 반의 학부모 대표였고, 그 이유로 엄마는 우리 반에 출근하다시피 하셨고, 나는 엄마의 양장을 끊임없이 상종해야 했다. 처녀시절 매동국민학교 교사직을 역임하셨고, 그곳서 ‘인왕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으실 만큼 인상적인 선생님이셨던 엄마인지라, 집안 살림보다는 학교에 오시는 걸 더 좋아하셨다.
엄마가 학교에 오는 걸 기뻐하기는커녕,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서 살림을 않고 한복도 입지 않을까를 의문하고 고민하며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마저 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 엄마는 마흔 직전의 나이였고, 여자로서 결혼과 아이 기르기 외에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가져볼 시기였으리라.
세월을 잘 만났더라면 그리고 계속 교사직에 머무셨더라면 엄마는 아마도 문교부장관은 아니더라도 학교장에서 교육감 정도는 쉽게 이루셨을 것이고, 바람을 잘 타셨더라면 미디어에 뜨는 인물이 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엄마가 양장하고 초등학교 딸아이 반에 가서 무용 가르치는 것으로 겨우 만족하여야만 했을 테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그것을 심히 부끄러워했던 나 자신의 무지와 몰이해가 원망스럽기조차 하다.유독 엄마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집에서 아이들이 학교서 오는 걸 기다리는 엄마이고자 애썼다.
독일서 딸을 기르면서나, 미국서 아들을 기르면서 그 애들이 부끄러워하는 엄마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 애들과 친구처럼 대화하느라 애들이 듣는 음악도 찾아 듣고, 애들이 학교서 읽는 소설도 학년 따라 함께 읽고, 그 애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는 토론도 하며 엄마와는 다르게 사느라고 애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에 와선 부끄럽게만 여기던 그 옛날의 엄마에 대해 존경스런 마음이 들뿐 아니라 엄마처럼 살지 못한 걸 후회하는 마음마저 생긴다.
여자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다른 엄마들이 한복 입고 집안 살림만 하던 시절에 혼자서 양장하고 딸아이 반에 와서 무용 스탭을 가르치던 엄마의 용기가 부러워지면서 좋은 세상을 만났어도 별 활용을 못하고 사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로 결론지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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