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석유공사(PEMEX)의 고위직인 인사담당관까지 지낸 에스페란사 이(65)는 이민선을 타고 9세에 멕시코에 도착한 이순녀(Richardo Lee)와 멕시코 백작부인 리 실이아테마네사이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 이순녀는 부모를 따라 이민선을 탄 1.5세이다. 이순녀 가족이 멕시코시티로 이주한 것은 그가 14세때인 1910년이었고 그때부터 점원생활을 시작, 16세에 이미 시계점포를 운영, 당시 한인계로선 가장 부유한 재력가로 부상했다. 
1929년 당시 그의 연수입은 4만원에 이르렀고 1만4,000원상당의 큰 주택과 ‘라 코레아나’ 라는 1만여원상당의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자동차도 갖고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유태인이 재정보증을 서 줄만큼 사업수완과 신용이 컸기때문이라고 회상한다. 그는 한국어와 서반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2중언어를 배경으로 돈없고 말못하는 한인들을 돕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그는 1942년 멕시코지방회의 신임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멕시코내 각 지방회의 목소리를 하나로 단결시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썼다. 에스페란사는 현재 은퇴했지만 아버지를 이어 멕시코의 후예한인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에스페란사는 1973년 장기철과 결혼, 슬하에 유리(29), 룻(27), 미림(25)등 1남 2녀를 두었다. 장기철은 함경도 출신으로 아들의 이름을 고구려 유리왕의 이름을 따서 유리라고 지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 서반아어과 5회로 1967년 멕시코로 국비유학생으로 유학을 왔다. 한·멕국교 수립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소지한 최초의 유학생인데 그들의 결혼식은 현지 매스컴으로부터 각광을 받았으며 멕시코석유공사의 고위관리를 비롯해 각계인사들이 많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장기철(63)은 74년 칸쿤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77년 파산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으나 건설사업으로 재기했으며 현재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 LG산전의 멕시코 에이전트로 엘리베이터를 수입해다가 멕시코업체에 판매하고 있다. 
장기철은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한인후예들의 모임(Associasion de Corea)을 결성해 그 리더로도 활약하고 있다. "멕시코지역의 한인들이 조국이 일제치하에 있을 때 공채를 매입해 이를 독립자금으로 국민회 북미지방총회등을 통해 한국으로 보냈다"고 밝힌 그는 한 주당 5원이던 당시의 공채를 현재도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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