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파원 코너]
▶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다우존스 지수와 닛케이 지수는 뉴욕과 도쿄 증시의 대표적 주가지수다.
그 두 지수가 최근 45년만에 역전했다. 지난 1일 다우존스 지수는 종가기준으로 9,907 포인트로, 닛케이 지수 9,791 포인트를 앞질렀다.
주가 지수의 구성요소와 산정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가 어렵지만, 뉴욕과 도쿄 증시의 주가지수 역전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는데 유익한 자료가 된다.
닛케이 지수는 57년 8월 6일 당시 500대에 머물던 다우존스 지수를 젖히고 일방적으로 상승했다. 80년대 중반에 1만 포인트를 돌파한 닛케이 지수는 5년만에 4배나 폭등했고, 일본은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을 제끼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89년 12월말 닛케이 지수는 3만8,915로 정점에 달했는데, 당시 도쿄증시 사람들은 머지 않아 4만을 돌파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때 다우존스 지수는 2,753에 불과했다. 일본 천황이 사는 황궁의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사들일 정도까지 치솟았다.
자신감에 찬 일본인들은 미국의 자존심이라던 헐리웃의 콜롬비아 영화사,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매입했고, 하와이는 엔화가 달러를 밀어내고 마치 일본의 내지처럼 전락했다.
1990년 일본 다이쇼와 제지사의 사이토 료에이 회장은 피카소 그림 2점을 무려 1억6,000만 달러에 샀다. 그는 죽어서 그 그림을 무덤에 가져가겠다고 말해, 전세계 화랑을 경악케 했다.
그러나 90년대는 일본의 시대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회장이 1억 달러짜리 그림을 무덤에 가져가겠다고 하는 회사가 성할 리가 없고, 그런 기업이 성공하는 나라의 경제가 든든할 수가 없다.
일본 경제는 90년대 들어 부동산의 거품이 힘없이 꺼지고, 땅과 빌딩을 담보로 돈을 흥청망청 빌려준 은행들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했다. 주식시장에도 거품이 꺼졌고, 닛케이 지수는 2년만에 반토막이 나 2만 이하로 떨어졌다.
92년 다이쇼와 제지도 빚에 몰려 은행에 피카소 그림을 내주지 않을수 없었다. 일본의 채권은행은 압류한 피카소 그림을 서양사람에게 경매처분했다.
일본 경제는 90년대 내내 장기 침체에 빠져 있었고, 그사이에 미국은 10년간의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그러는 사이에 닛케이 지수는 75% 하락했고, 다우존스 지수는 260% 상승, 마침내 두 지수의 숫자가 반세기만에 뒤바뀐 것이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3월부터 경기침체에 빠져있지만, 올 상반기중에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해, 일본 경제는 아직도 가라앉고 있다.
8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제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 교수는 미국이 침몰하고 일본과 독일이 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90년대말에 자신의 진단이 잘못됐다고 술회한바 있다.
학자들 사이에 지난 10년간 미국 경제가 다이내믹하게 살아나고, 일본 경제가 침몰하는 과정이 좋은 주제가 되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후 공산국가가 와해되는 바람에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우위가 확인되었고, 80년대를 거쳐 미국 경제가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장기 호황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경제 전반에 도사리고 있는 부실을 도려내지 않은채 정부가 구제자금을 지원, 임기응변식으로 처방하려 하다가 침체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을 모델로 60년대 경제개발을 추진해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일본식 모델이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97년 외환위기로 입증됐다. 그후 미국식 모델을 좇아 경제 개혁을 단행, 현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와 닛케이 지수의 역전은 지난 반세기동안 세계 경제의 두축이 크게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또 새로운 세기 시작과 함께 미국과 일본 경제를 축으로 하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어디로 갈지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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