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TV 화면을 통해 뉴욕 참사 현장을 지켜보며 드디어 21세기의 불길한 조짐이 나타난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 한달 남짓 지나는 동안 미국은 이웃의 고통을 자기의 아픔으로 품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한편, 테러 일당을 인계하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제 경고 기간이 지나 직접 테러범 색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전쟁의 형태이므로 또 다른 형태의 무고한 희생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은 보복이 허용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한없이 용서해 주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평소에 즐겨 쓰던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가 갑자기 무서운 갈등으로 조여온다.
이번 사태로 인한 재정적 손실이나 심리적 후유증은 덮어둔다고 치자. 언제고 회복이 가능한 것들이니까. 그러나 6,000의 고귀한 생명은 어찌하는가?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웃들이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답답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에 대한 해답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발견했다.
C.S. 루이스가 쓴 ‘단순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중 ‘용서’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고명한 학자의 ‘원수 사랑론’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면 우선 내가 내 몸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살피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내면을 드려다 본다.
사랑스런 면이 많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추악한 면도 보게 된다. 욕심, 거짓, 비겁…. 때로는 묵과해서는 안될 죄목까지 끼어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죄를 그대로 간직한다. 그리고 거기에 심적 고통까지 보탠다. 죄+죄책감. 그러나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죄 값을 치르고 자신을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려 할 것이다. 죄-죄 값=자유.
저자는 똑같은 이치를 원수까지 포함되는 이웃 사랑에 적용하라고 일러준다. 정말 이웃을 사랑한다면 적절한 죄 값을 치르고 자유를 누리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천 판사가 죄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크리스천 군인이 적병을 살해하는 행위는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해 준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은 영원을 사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성품은 영원한 삶에 걸맞도록 키워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저지른 죄 값은 청산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사형에 처하거나 벌하는 일이 불가피할 때도 생긴다. 그러나 벌주는 일에 재미나 기쁨을 느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은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라는 뜻이 아니다. 원수가 나빠도 좋게 생각하라는 뜻은 더더구나 아니다. 마땅한 죄 값을 치러 그가 영원을 살며 복 받기를 바라라는 뜻이다. 이것이 진정한 원수 사랑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악한 세력의 도전으로 보았다. 공격은 테러 색출을 위한 것이지 아프간 폭격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아프간 어린이들을 위한 1달러 모으기 운동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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