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고교생이 평소 자신을 괴롭힌 급우를 수업 중에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가해자인 고교생은 경찰에서 "영화 ‘친구’를 40여 차례나 보면서 용기를 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해 폭력적이거나 폭력을 미화하는 영화가 청소년들에 미치는 악영향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란 네 친구의 엇갈린 운명과 비극을 그린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전국 관객 800만 명이라는 한국 영화사상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긴 화제작.
그러나 이 영화 속에는 조직 폭력배들끼리의 유혈이 낭자한 `칼부림’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욕설 대사가 난무해 개봉 이후 `폭력성’ 논쟁에 휘말려 왔다.
극 중 유오성은 조직원들에게 `(칼은)항상 찌르고 나면 90도로 날을 돌려 준 뒤아래서부터 위로 쳐올린다’ 등 살인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핏빛 복수극이 스크린을 메운다.
’친구’는 특히 `폭력’을 비장감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8세 관람가’ 등급임에도 중고생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불법 관람이나 비디오, CD 등을 통해 `볼 사람은 다 봤다’는 점이 이같은 우려를 더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영화계 안팎의 일부 인사들은 ‘친구’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4월 열린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폭력성’ 등을 이유로 당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친구’를 수상에서 제외해 수많은 팬들의 원성을 샀는가 하면, 영화배우 출신인 강신성일 국회의원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차마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욕설과 잔인한 폭력 장면으로 얼룩져 있는 영화가 열광적으로 환호되는 사회심리학적 배경에 전율을 느낀다"고 강도높게 비판해 본격적인 `친구 논쟁’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떠오른 영화의 `폭력성’ 논란은 최근 ‘신라의 달밤’과’조폭 마누라’’두사부일체’’달마야 놀자’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조폭영화 붐’과 맞물려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모처럼 형성된 `한국 영화의 흥행 열기’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강한섭 서울예대 영화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영화가 청소년 또래에 영향을 줄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은 현실과 영화를 구분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경직성에 있다"면서 "창작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모순된 두가치를 민주사회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시민의식을 향상시킬때 사람들은 영화를 단순히 재미와 오락, 혹은 예술로서 거리를 두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은 "’친구’는 사실 할리우드 영화보다 덜 폭력적"이라면서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이 청소년들에게 `폭력의 무감각함’을 가져다 줄 수 있긴 하겠지만 우리 사회에 내재된 `폭력’(최근 발생한 미국 테러 사건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들이 청소년들을 더욱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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