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신세대 스타’. 이런 수식이 따라다녔던 많은 스타 중에 아직도 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얼마 동안 각광 받던 그들은 색 바랜 물놀이 튜브처럼 잊혀졌다.
배두나(22)도 시작은 그랬다. 1999년 데뷔했을 때 그를 수식하는 말은 ‘중성적’ ‘톡톡튀는’ 이었다. CF로 그의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TV 연예 프로그램 MC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는 스타 자리에서 물러난 대신 연기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스타와 연기자의 길이 어디쯤에서 갈라진다면 그는 분명 연기자 쪽으로 몸을 틀었다.
“왜 옛날엔 머리는 폭탄 맞은 것 같고, 아무 생각 없이 보였잖아요. 그냥 무조건 튀어 보이고. 그런 점은 싫어요. 하지만 중성적인 이미지, 일탈할 듯한 이미지는 간직하고 싶어요.” 데뷔 이후 각인된 ‘배두나이미지’ 에 대한 생각이다.
지난 달 26일 촬영을 마친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 의 스태프는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거나 현장 분위기를 다독거리는 것을 보면, 배두나 장난 아니다” 며 연기자 배두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는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디딘 20세의 여고 동창 5명의 이야기. 배두나는 찜질방을 하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 출신이지만 반항하기 위해 옷을 꾀죄죄하게 입는 스무 살 백수 ‘태희’ 로 나온다. “태희와 두나는 닮은 점이 좀 있죠. 일상의 행동 양식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안주 하기 보다는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 닮았어요.”
‘가능성 있는 연기자 배두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흥행에 실패했거나 비중이 작은 캐릭터를 통해서이다. 제작자인 차승재 감독도 “흥행에 실패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 영화 ‘플란더스의 개’, “배두나의 연기가 아깝다”는 동정론이 대세였던 영화 ‘청춘’, “배두나가 왜 저런 시시한 배역을 맡았을까” 하는 ‘엄마야 누나야’ 등. ‘플란더스의 개’에서 배두나는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는 일상적인 연기를 보이는 데 특별한 재주를 보였고, ‘청춘’에서는 신세대의 상처를 드러냈으며, ‘엄마야…’에서는 톡톡 튀지 않고도 속 깊은 자기를 드러낼 줄 알았다. 아직도 그를 ‘튀지 못해 안달이난 듯한’ 신세대 배두나로만 알고 있다면, 착각이다.
“영화 ‘청춘’을 생각하면 희생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두드러지지 않고, 남을 받칠 줄도 아닌 역도 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구요.”
길거리에서 캐스팅 된 ‘일회용 CF 스타’로 안주하지 않은 데는 연극 배우인 어머니 김화영씨의 공이 컸다.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테크닉부터 배우면 안 된다”는 말을 해 준 어머니는 요즘엔 “이제 네가 마음이좀 움직이는 것 같다”며 딸의 연기를 ‘인색하게’ 칭찬한다.
배두나는 요즘 시나리오가 몰리는 배우 중의 하나. “얼마전 ‘선데이 서울’이라는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천사 역할이에요. 날개를 단 반항적인 천사. 너무 재미있었어요.”
많은 시나리오를 읽고 결정한 다음 작품은 ‘공동경비구역JSA’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코카콜라마시며 미군 철수를 외치는 철없는 사회주의자로 신하균을 꼬드겨 유괴사건을 벌이는 문제의 캐릭터다. 역시 단순히 ‘예쁜여자’의 캐릭터는 아니다.
“멜로 영화에는 아직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멜로라고 꼭 청순가련형이 해야 하나요?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그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외모요? 연기력으로 커버하죠, 뭐.” 씩씩하고 영리한 배두나는 언젠가 또 틀을 한번쯤 깨버릴 것 같다. 벌써 한 번 깨뜨린 배두나다.
박은주 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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