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1만피트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어떤 것일까’
창밖의 태평양 상공은 칠흑같은 밤이다. 실내등을 끄니 밖은 더 잘 보인다. 그러나 땅 위에서 쳐다볼 때 보다 별들은 지상에서 1만피트나 더 올라왔는데도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지상에서 수천 수만미터 고공이라는 개념은 지구에서 저 별들까지의 거리에 비하면 수천 수만, 아니 수억, 수십억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미처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유치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앵커리지가 다가오면서 어둠의 바다, 운무가 깔린 수평선 저 편을 멀리서 들어온 빛의 반사로 장관을 이룬다.
한밤중을 날으는 기체 안에는 깊은 잠에 골아떨어진 사람들의 흐트러진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300개의 객석에 불이 켜진 곳은 서너 자리 뿐이다.
무변광대한 우주공간에서 한 점으로도 나타내질 수 없는 점보비행기, 그 속에 티끌처럼 앉아있는 나는 무엇인가.
우주속에 존재의 크기로 말하자면 이 세상 생명의 숫자로 헤아리자면 나의 무게와 내가 차지하는 자리는 티끌 이상의 것이 못되리라. 하면서도 나는 우주의 크기를 말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논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알고자 하며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가정을 설정하기도 한다.
내 안에 무변대의 공간이 숨쉬고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누군가 인간을 ‘소우주’라 했던가.
날만 새면 아귀다툼하는 마구니들의 소식이 전파를 타고 휩쓰는 세상에서 놓여난 듯해 한동안 편안했는가 싶었는데 기내 TV의 대형화상에 세상소식이 전해진다. 험한 내용이 대부분의 뉴스를 장식한다. 지구의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모습은 추하고 골치아픈 일들 뿐인가. 귀에 꽂은 리시버를 벗어던지고 TV에서 눈을 돌린다.
일부변경선을 지나온지 얼마 안된 지금, 한국시간으로 밤 1시 무렵인데 기체의 좁은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밖은 동이 트고 있다. 그렇게도 어둡던 칠빛 하늘은 금새 푸른색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철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이 변하고 있다. 소리없이 조용히,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인간세상에서는 조금만 변하려해도 ‘개혁’이다 ‘수구’다, ‘진보’다 ‘보수’다 하며 옥신각신 법썩을 떠는데, 저 하늘빛은 온통 달라지는데도 어찌 저리 조용한가.
7년만의 미국 방문은 초장부터 여행의 멋을 맛보게 하는 것 같다. 일상의 다툼과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사람들을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삶의 짐이 더 많이 덜어진다고 생각하며, 여비의 부담을 무릅쓰고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며 제모습을 돌아보고, 때로는 풍덩이가 웅덩이를 벗어나는 창조의 기회인 듯 여행의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원효대사가 당나라 여행길에서 얻은 ‘깨달음’과는 견줄 바 아니겠으나 티끌같은 미세한 존재가 무한량의 공간에서 개아(個我)를 돌아볼 수 있음도 나름대로의 소출이 있는 나들이가 아닌가 싶다. 소아의 이기적 집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일탈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뿌듯함과 함께.
20세기를 주름잡고, 새 밀레니엄에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활개치고 있는 미국을 오랫만에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 이번 여로는 비용이 아깝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어둠이 짙게 깔린 뉴욕의 존 F. 케네디공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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