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아담이네가 이사를 간단다. 18년간 마주보고 살던 이웃이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맨 먼저 찾아와 환영한다고 뭐 도와줄게 없냐고 묻던 Mrs. D네가 플로리다로 떠난단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의 작고 큰 추억들,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해준 일들, 각 고유 명절 때마다 음식을 나누어 먹던 일들, 눈이 올 때 함께 눈을 치우고, 동네 개구쟁이들이 우리 집에 돌을 던지고 달걀을 던지던 까마득한 시절에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아이들을 쫓던 일, … … 아침 저녁 어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한국 사람보다 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던 그들 가족, 내게도 흔히 미국인들이 부르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꼬박 꼬박 Mrs. L 이라고 부르던 사람들, 마주치는 순간마다 기뻤고, 항상 옆에 있어서 든든하고 고마웠던 사람들, 그러나 한번도 남의 사생활에 비난이나 푸념같은 것이 없던 나의 진정한 이웃이었다.
그들과 나는 몇 달 전부터 마주칠 때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내게 맨 마지막으로 알려주려 했었는데… 하며 손을 잡는다.
오늘은 그들이 Yard Sale을 했다. 이사가기 위해 필요없는 것들을 정리하는 미국 생활 풍습의 하나인 것 같다. 내 아이들은 부지런히 도와주며 아예 그 집 앞에 가서 놀고 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심정이 말로 표현하기 힘이 들었다. 내 형제는 각나라에 하나씩 떨어져 살아서 넷이서 만나려면 그야말로 4개국으로부터 오는 다른 비행기에 마중나가야 하는 내게, 그들이 가장 가까운 의지였었다.
자아, 그들은 은퇴하여 노인의 복지라는 플로리다로 간다. 언제 저 많은 물건을 재워두고 살았나? 웬 쓰레기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살았냐고 놀려주었다. 하지만 내 집안을 둘러보며 생각하니 다 버릴 때가 된 물건들 같았고, 나도 그들처럼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예 나도 이사가는 사람들처럼 집안의 물건들을 확 한번 치우고 싶어졌다. 이민 와서 세 번째로 이 집에 이사오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이사 안가고 살아야겠다고 큰 소리치던 것이 진짜가 되는가 싶기도 하다.
애 아빠도 떠났고 아이들은 자라서 하나씩 대학으로 떠난다. 늙으신 어머니와 나는 아침마다 신문을 보다가 돋보기 너머로 앞뜰에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시선을 돌린다. 가슴에 남는 그 어떤 말…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잊은 채 이 땅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픔인지 평안인지 모르겠다. 나는 Mrs. D 처럼 다른 도시로 떠나서 제2의 삶을 꾸밀 꿈이 없다. 이 많은 나의 삶의 짐과 부과된 일들을 정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이 집을 이대로 지키며 살게되지 않을까…
Mrs. D 가족은 좋은 친구, 훌륭한 이웃이었다. 그들은 어디에 가더라도 또 좋은 친구, 훌륭한 이웃이 될 것이다. 나도 누군가가 그네 집에 새로 이사를 오면 그런 이웃이 되고 싶다.
내가 이 지상을 떠나 영원히 이사가는 날, 그 누군가의 가슴에 “아, 그 한국 여자… 참 좋은 이웃이었어…”라고 남겨두고 떠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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