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젊은 선생이었을 때 내가 만났던 대조적 두사람을 생각하면 “웅변은 은이요, 침묵이 금이다"라는 영어 속담이 떠오른다.
‘K’는 약 반세기전, 북한땅 내 고향에 있던 큰 공립학교의 교장이었다. 50대였던 그는 유난히 키가 작았다.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어서 일부 심술궂은 사람들은 그를 부주의한 ‘머슴’이 만든 ‘메주’라고 묘사했다.
그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느 잘생긴 남자만큼이나 자신만만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그는 전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탐독가였고 말하길 좋아했다.
우리는 하루에 세 번 회의를 가졌다 - 아침, 점심, 그리고 오후 늦게였다. 모든 회의에서 교장이 주로 말을 했다.
회의는 15분정도로 예정되었지만 한시간을 넘기기가 예사였다. 많은 교사들이 회의시간을 싫어했으나 아무도 감히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지루한 회의에 개의치 않았는데 그것은 교장의 초등교육 이론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K교장은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노는 몇몇 교사들을 칭찬했다. 반면,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놀지 않고 책상에 앉아 수업준비를 하거나 시험지를 채점하는 교사들을 나무랐다.
한 번은 오후시간 회의에서 교장이 말하고 있는데 교사 한사람이 졸면서 코를 골기 시작했다. 교장이 이를 알고는 엄청나게 화를 내며 펄펄 뛰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몇마디 훈계한 다음 사무실을 떠났다. 교장이 문밖으로 나간 후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졸다가 야단맞은 그 선생도 웃었다.
어느날 오후, 교장은 또 다른 연설을 하며 현대식 새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학교 건물에 불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상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농담이며 우리를 깨어있게 하려고 한 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밤 10시 무렵에 화재가 발생, 20여개 이상의 교실이 불에 탔다. 아무도 화재원인을 알지 못했다.
화재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장은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근당하고 새로 ‘U’교장이 부임했다.
그 전임자와는 달리 U교장은 말이 적고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는 교사들과 사무실을 함께 쓰지 않았다. 모든 회의도 없앴다. 단지 필요할 경우에만 회의를 가지게 되어있었다.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고 몇주일이 흘러서 모두가 새 교장이 어떻게 할건지 궁금해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가교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업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교실을 한 번 훑어볼 뿐,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다.
어떤 선생들은 새 교장이 무관심하다며 불평했으나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화재 몇 달 후 관청의 재정지원과 도움으로 새 2층 벽돌건물이 완공됐고, 완공을 축하하는 큰 행사가 열렸다.
U교장이 연설을 해야 했다. 그는 관중을 내려볼 수 있는 작은 단상에 올랐다. 키가 무척 컸으므로 그 모습은 과히 위엄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내가 들었던 연설 중 가장 짧았고 형편없었다. 모두들 실망했다.
그런데 새 건물을 가진 기쁨도 일련의 새로운 문제로 망쳐졌다. 누군가가 밤중에 건물로 침입해들어와 학교 비품과 심지어는 교사들이 서랍에 넣어둔 돈까지 훔쳐갔다.
예방책으로 교사들이 팀을 만들어 숙직을 섰으나 소용없었다.
어느날 아침, 학교 전체가 전날 밤사이의 일로 이야기가 분분했다. 교장이 도둑을 잡은 것이었다.
첫 도난사고 이후부터 교장은 밤마다 학교 근처의 큰 나무밑에 숨어 있었다.
마침내 그날 밤, 건물로 다가와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도둑이 훔친 물건을 한아름 안고 건물밖으로 나올 때 교장이 “도둑이야"하며 뒤에서 그를 갑자기 붙잡았다.
도둑은 체포되어 처벌받았고 도난사고는 없어졌다.
용감한 교장 이야기는 근처뿐 아니라 먼 곳까지 전해졌다. 그 결과 말없는 교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달라졌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이 금일지 모르지만 행동은 더 훌륭한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다른 학교에서는
독일어를 가르친바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했으며 1998년 5월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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