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서 일탈을 경험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소호와 이스트 빌리지에서 마음껏 자유의 바람을 들이마시고 온다.
60년대 히피, 70년대 중반 펑크를 비롯, 요즘의 퓨전(fusion) 문화까지 모두 모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거리에선 상식의 틀을 깨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아방가르드 문화를 눈으로 볼 수 있고 방금 잡지에서 빠져 나온 듯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을 길거리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가는 날은 웬지 가죽 재킷에 샤이니한 셔츠, 수놓인 팬츠를 입고 가야할 것만 같다.
지난달 29일 이 거리, 이스트 빌리지의 조스 팝스에서는 안트리오의 콘서트가 있었다. 새앨범 ‘안플러그드’ 홍보차 가졌던 8월23일의 콘서트가 기대이상의 호응을 얻자 다시 무대가 마련된 이날, 우선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었다.
마리아, 루시아, 안젤라 등 세 자매로 구성된 안트리오는 각자 입고 싶은대로 옷을 입고 나와 귀신같은 솜씨로 바이얼린을 켜고 피아노를 치고 첼로를 연주했다.
하얀 꽃무늬가 있는 푸른 색 차이나 드레스를 입었는가 하면 번쩍이는 빨강 가죽 상의에 검정 가죽 팬츠를 입고, 또 훤히 등을 드러낸 셔츠에 목걸이를 거꾸로 매달고 집시풍 반짝이 그물 드레스를 입은 자매들, 연주를 심각하게 하지 않고 경쾌하고 감미롭고 화려하며 신선하게 했다.
정통 클라식 음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가볍다고, 지나치게 섹시하다고 하겠지만 그들의 콘서트는 만원이었고 대중들은 재미있어했다.
87년 타임지에 ‘아시아의 신동들’로 소개되고 91년 세계적인 실내악 콘테스트 콜먼 콩쿠르에 우승하고 98년 독일최고 음반상 실내악상을 수상한 그들의 실력은 더 이상 말할 필요없이 그들의 콘서트는 이미 뉴요커들 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고급예술과 대중과의 벽을 없앤 이 연주회를 들으며 한국에서 갔던 콘서트를 떠올렸다. 80년대 중반 신촌 사거리에 생긴 크리스탈 극장에서 록그룹 들국화의 콘서트가 있었다.
83년 결성된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 등 초창기 멤버 4명이 새하얀 칼라가 살짝 보이는 검정 학생복 차림으로 목이 터져라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자 객석의 10대 소녀들은 열광했다.
무대의 움직임에 따라 그들 모두 가녀린 양팔을 올려 리듬에 맞춰 흔드는데, 그 손마다 새하얀 들국화 몇 송이가 들려있었다. 들국화를 든 그 마음이 참 예뻤다. 작고 소박한 꽃의 향내도 좋았다.
구 시민회관 별관에서 열린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의 콘서트에선 아예 무대 앞으로 몰려나간 10대들을 보았다. 두들기고 긁어대고 비트는 곡을 신나게 연주하자 객석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이 우르르 나가더니 객석 앞좌석을 디스코텍으로 만들었다.
수십 명이 몰려서 밴드 소리에 맞춰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그 열정이 좌석에 가만히 앉아서 보는 사람도 즐겁게 만들었다.
클라식 음악의 맑고 정교하고 완벽한 평온도 좋지만 때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클라식이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 그 속에서 일반 대중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기쁨을 얻는다면, 생활화 된 클라식이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며 흘러간다면 우리는 좀더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인 자매 안 트리오의 콘서트가 먼 훗날, 뉴요커들이 좋았던 한 때를 추억할 때 ‘아, 그 콘서트’ 하며 애틋한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기 바란다.
모두의 가슴속에 지난 시절 잊지 못할 공간으로 자리잡아갈 때 보는 자유, 듣는 자유를 주는 이 콘서트는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트 빌리지의 밤은 어제도 젊은이였지만, 오늘도 젊은이임을 느끼게 해주어서 가끔 나가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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