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세 폐지론, 상속세 폐지론 등 총선을 앞두고 각종 경제정책을 둘러싼 공약이 난무하면서 ‘경제적 공정성’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경제적 공정성’이라는 얘기를 들먹일 때에는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말을 부드럽게 돌려서 하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진단한 오늘날 미국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경제적 불평등을 문제삼는 이유는 미국사회에서 갈수록 빈부차가 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의 원인과 정도와 경향이다. ‘허준’이나 ‘왕건’이 재미있다고 하루 종일 TV만 끼고 있고 하루가 멀다며 골프장을 찾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잘 살아 보겠다고 ‘투 잡’까지 뛰는 사람이 똑 같은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평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란 문제를 심각히 여기는 것은 아니고 사실 그러한 불평등이 있는지, 증가하고 있는지, 우려할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소득의 분배가 너무나 편향적이어서 사회 전체가 퇴보했다고 우려한다. 리처드 프리먼 교수(하바드대)는 "경제적 불평등과 범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고교 중퇴자들이 교도소에 가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예로 든다. 에드워드 울프 교수(뉴욕대)는 "젊은이들이 돈을 더 많이 벌면 결혼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산정책문제연구소의 로버트 그린스타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전체 소득수준의 중간가(자기 보다 많이 버는 근로자의 수와 자기 보다 적게 버는 근로자의 수가 똑같은 사람의 소득)에 대한 최저소득 근로자층의 평균소득이 38%에 불과해 독일(50%), 프랑스(50%), 영국(46%), 일본(46%) 보다 한결 낮다.
반면 경제적 불평등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빈곤해지지만 않았다면 부자가 더 부유해졌다는 것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며 하품한다. 물론 이들은 "미국의 저소득층은 절대적으로 빈곤해지지 않았다"면서 1973년 이래 남자 근로자의 소득은 줄었을지 모르나 여자 근로자의 소득은 증가했다는 통계를 들이댄다. 이같은 추세와 함께 가구당 인구가 줄었기 때문에 가구당 소득과 일인당 소득이 늘었을 수밖에 없으며 같은 기간 주택의 질도 높아지고 메디케어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똑 같은 일자리를 계속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득수준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이같은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통설’은 미국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약 30년간 부유층의 현금 소득 증가는 빈곤층의 현금 소득 증가 보다 더 빨랐으며 그 사이에 중산층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소득수준이라는 사다리를 높이 올라갈수록 소득증가 현상도 더 두드러졌다.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 어째서 현재의 빈곤율(12.7%)이 1973년 수준(11.1%) 조차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다. 1973~98년 가구당 실질소득의 중간가는 약 9% 상승, 98년이 돼서야 89년 수준을 넘어섰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상속되기 때문인데 주로 이런 현상은 교육을 통해 발생한다. 한 마디로 대졸자가 고졸자 보다 소득이 높은 현상이 대표적 예인데 미국의 노동시장이 고학력 근로자를 더욱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가운데 1980~90년대 대졸자의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 기간 유럽에서는 대졸자 수급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져 미국에서처럼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차가 더 벌어지지는 않았다.
경제정책 전문가들은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미국사회를 더욱 병들게 하기 전에 정부가 ▲빈민 자녀를 위한 기회를 확대하고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가족 가치를 강화시키고 ▲빈민층을 담세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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