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2006년 2월 미국에서 체포된 미국 영주권자 한국인 최만석(67)씨가 한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앞두고 지난 해 12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리스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는 최씨의 범죄인인도재판을 담당한 미 연방 캘리포니아중부지방법원이 3월1일 최씨가 병 치료를 위한 가석방 조건으로 2007년 8월 법원에 제공한 부동산 담보를 그가 사망한 이유를 들며 풀어준다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드러났다.
본보가 27일 입수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사망신고서’에 따르면 최씨는 2009년 12월18일 오후2시42분 ‘브레아의 킨드레 병원’(Kindre Hospital Brea)에서 “4급 폐암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졌다. 캘리포니아 거주 사업가인 최씨는 1994년 한국정부의 경부고속철 선정 당시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거액을 받고 불법로비를 벌인 혐의로 한국 당국의 수사 선상에 오르자 1999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한국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고속철 선정 과정에서 당시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제공했으며 알스톰사의 테제베(TGV)가 선정되자 1,229만달러의 사례금을 챙긴 혐의(특경가법상 알선수재)다.검찰은 최씨가 이 돈 가운데 4억원을 황명수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에게 건넸고 수사 대상이 되자 전윤기 당시 김포공항 경찰대장에게 경찰청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8,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했다.한국 정부가 2005년 9월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공식 접수시킴에 따라 미 연방보안관(U.S. Marshall)들에 의해 2006년 2월15일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검거된 최씨는 같은 해 10월10일 캘리포니아중부지법이 내린 범죄인인도결정에 항소를 제기해 한국으로의 송환에 대응해 왔다.
외국으로의 신병인도 대상자로 ‘특별한 상황’일 경우에만 보석이 허용된다는 법원 판례에 따라 보석신청이 기각돼 캘리포니아주 ‘메트로 구치소’(MDC)에 수감된 상태에서 범죄인인도에 법적 대응해 오던 최씨는 2007년 7월 폐암 진단을 받음에 따라 수술을 위해 가석방을 신청, 100만 달러 부동산 담보와 전자 발찌 착용, 정기적 의료진단 제출 등 조건으로 풀려났다.최씨는 2009년 2월 제9순회항소법원이 최씨의 항소에 대해 캘리포니아중부지방법원의 번죄인인
도결정이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범죄인인도가 최종 확정됐으며 캘리포니아중부지방법원은 미 국무부가 같은 해 4월19일까지 최씨의 신병을 한국으로 인도할 것을 명령했다.그러나 폐암 수술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계속 악화된 최씨의 처지를 내세워 한국으로의 송환 정지 요청을 최씨측 변호인으로부터 받은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최소한 6개월간 신병인도를 보류키로 했으나 최씨가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따라서 한국 검찰이 최씨를 통해 밝혀내려 했던 경부고속철 로비의혹의 실체는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
한편 한국 대검 중수부는 지난 해 2월12일 최씨의 범죄인인도가 계속 지연됨에 따라 올해 2월까지 유효기간을 연장한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2004년 3월30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식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고건 총리 등 주요 내빈들이 대형모형 고속철도 앞에서 개통 가드를 작성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최만석씨와 경부고속철도 사건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제출한 범죄인인도요청에 따르면 최만석씨는 한국 정부가 1989년 5월8일 발표한 경부고속철도 건설 계획과 관련 차량을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테제베)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문민정부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하기로 하고 1994년 11월 알스톰사로부터 1,129만달러를 받은 의혹이 포착되자 1999년 12월 법적인 출국 절차를 밟지 않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도피했다.
한국 검찰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3개 차량 회사 중 하나인 알스톰사의 최고경영자(CEO) 진 카리우는 1992년 12월 평소 알고 지냈고 훗날에 자신의 부인이 된 호기춘(58·여)씨에게 한국정부를 상대로 로비할 사람을 찾는데 도움을 요청했다.
호씨는 이어 1993년 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점쟁이’(Fortuneteller)로부터 최씨를 소개받았고 호씨와 최씨는 같은 해 4월초에 서울 웨스틴 호텔에서 알스톰사 회장을 만났다.알스톰사는 호씨와 최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 차량 계약을 따내는 조건으로 총 계약금의 1%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들 받아들인 최씨와 호씨는 이 돈을 최씨가 65%, 호씨가 35% 나눠 갖기로 했다.
최씨는 1993년 4월 말 당시 집권당이던 민자당의 황명수 사무총장을 접촉해 알스톰사를 위한 영향력 행사를 부탁했고 이 같은 로비 활동으로 인해 1994년 6월14일 알스톰사가 선정됐다.알스톰사는 1994년 11월28일과 5월16일 최씨의 홍콩 은행 계좌에 약 1,129만2,803달러를 송금했으며 최씨는 그 중 395만2,200달러를 호씨에게 입금시키고 4억원을 황 사무총장에게 정치력 행사 대가로 지불했다고 한국 검찰은 주장했다.검찰은 또 1995년 6월8일 홍공 경찰로부터 최씨 은행 계좌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한국 경찰이 같은 해 11월 수사에 착수하자 최씨가 호씨와 공모해 전윤기 당시 김포공항 경찰대장에게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1995년 12월∼1996년 2월 약 8만달러를 지불했고 이로 인해 실제로 1996년 3월19일 경찰 수사가 마무리 됐음도 주장했다.
검찰은 이외에도 1999년 9월28일 출국이 금지된 최씨가 같은 해 10월2일 로스엔젤리스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적발돼 여권을 압수당했으며 1999년 10월29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 같은 해 11월 중 압수된 여권이 되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입국해 이들 3개 범죄 혐의로 최씨의 신병인도를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범죄인인도요청에서 밝혔다.한국의 범죄인인도요청에 따라 미국에서 검거된 후 보석이 불허되자 최씨는 보석불허 판결에
대한 ‘검토 및 재심’ 신청에서 자신을 “미국에서 35년간 거주했고 30년전 결혼한 부인과 함께 켈리포니아주 주택에 1999년부터 계속 거주해왔으며 부인과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이 시민권자이고 1999년 미국 시민권을 신청해 2001년에 인터뷰를 마치고 시민권 발급을 대기중인 영주권자”라고 밝힌 뒤 “부동산 개발 및 관리 회사 ‘칼 랜솜’ (Cal-Ranson Inc.)사를 운영하는 성공적인 사업가”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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