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만난 최선아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뇌전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외국어고 기숙사 입소를 기대하던 A군은 학교로부터 기숙사 생활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선아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안전 문제 때문이겠지만 뇌전증 환자의 70~80%는 약을 복용하면 학업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며“예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해 비정상 전기신호를 일으키고, 이 때문에 경련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21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만난 최 교수는“사회적 시선 탓에 환자나 가족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보니 뇌전증은 치료에서 소외된 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 일례가 미주신경 자극기다. 이는 목을 지나는 10번 뇌신경(미주신경)에 전기자극을 보내 경련 빈도와 강도를 줄이는 장치다. 그는“경련이 시작되기 전 심박수가 빨라지면 이를 감지해 전기자극을 보내는 기기로, 미국·유럽에선 10년 전부터 쓰였는데 국내에는 최근에야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약도 마찬가지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위해 미국에선 경련이 나타날 때 부모가 콧속에 직접 뿌리는 비강 스프레이(성분명 미다졸람)가 쓰이고 있으나, 국내에선 향정신성 약물이란 이유로 도입이 막혀 있다. 그는“성장기 아이가 경련을 길게 지속하면 뇌 손상 우려가 큰 만큼, 철저한 관리 체계를 세워서 국내에 들여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련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경련 시간을 확인하고, 날카로운 물건을 치워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옷이 꽉 조인다면 느슨하게 풀어주고, 아이를 한쪽으로 돌려 눕혀 기도를 확보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은 5분 내에 멈추지만, 그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된다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해요. 대발작 중에 숨을 잘 못 쉬고 입술이 파래지다 보니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아이 입안에 넣어 억지로 입을 벌리려다가 보호자 손가락이 다치거나, 아이 치아가 손상될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아요.”
-약물 치료는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뇌전증 환자 10명 중 7, 8명은 약으로 증상이 조절되고, 이 중 3명은 2~5년간 약물 치료 후 약 복용을 끊어도 재발이 없어요. 항생제 같은 다른 약처럼 내성이 심하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가장 중요한 건 제때에 빠트리지 않고 약을 복용하고, 충분히 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어요. 뇌전증은 불치병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치유의 병’입니다.”
-수술에 대한 우려가 큰 것 같습니다.
“뇌전증 환자의 30% 정도는 항발작제를 복용해도 경련이 발생해요. 이런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는 수술이 효과적입니다. 다만 난치성 뇌전증이 있어도 모든 환자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수술 전 다양한 검사를 통해 발작이 시작되는 뇌 부위가 언어·시각·운동 등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인지 여부를 반복적으로 확인합니다. 기능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절제를 결정하기 때문에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데, 우리나라는 우려가 크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수술 시행률이 크게 낮은 편입니다. 절제 수술이 현실적으로 불가할 때는 미주신경 자극기를 삽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수술도 비교적 간단해 환자 부담도 적어요.”
-미국에서는 가정용 비강 스프레이를 처방한다고 들었습니다.
“미다졸람이라는 약물을 코에 뿌리는 방식이에요. 미국에서는 12세 이상이면서 경련을 반복하는 환자에게 보호자가 가정에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119가 올 때까지, 또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경련이 지속될 경우 보호자가 선(先)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에요. 뇌 손상으로 이어지는 오랜 시간의 경련을 보호자가 지켜보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고요. 하지만 국내에선 미다졸람이 향정신성 마약류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도입이 안 되고 있어요. 뇌전증 치료에 쓰이는 대마 유래 성분인 카나비디올이 엄격한 관리를 받으며 처방이 되는 것처럼 미다졸람 역시 제도 틀 안에서 도입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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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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